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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Nov 15. 2022

격동의 일주일

2022년 11월 둘째주

일주일이 참 힘들었다.


1. 소개팅을 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하겠다고 했는데, 300km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2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이미 카톡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춘천이 강원도에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말하는 것도 의아했고 만나기 전에 지나치게 연락을 자주 하는 것도 약간 불편했다. 만나고나니 나랑 접점이 없었다. 대학, 대학원, 자격증 취득과 같이 공부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던 나의 삶과 달리 이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생업으로 뛰어든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공통적인 사건은 2년 전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거였는데, 내 얘기에 대해서는 1도 관심없고 줄줄 자기 얘기만 했다. 특히 "인생 아무것도 없어요. 후후."라고 약간의 허세와 허무주의로 말하는 듯한 말은 나와 너무 달랐다. 난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밥을 먹다가 양념이 옷에 살짝 튀었는데, 그 때부터 기분이 나쁘다며 밥을 먹지 않았다. 이후 각자 운전해서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전화를 거니 '옷을 사고 있다'고 했다. 이게 뭐지...


  문제는 그냥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나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고, '내가 왜 이런 사람을 만나느라 시간 쓰고 돈 쓴 거지?' 하는 화가 치밀었다. 심지어 생각이 파국화되면서 걱정과 불안이 올라왔다. 앞으로도 좋은 사람, 또는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거 아닌가? 혼자 살면 돼! 하면서도 못내 슬퍼지고 우울해졌다. 



2. 넘어졌다.

  이렇게 기분이 안 좋으면 뭔가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생각을 고쳐 잡으며 터덜터덜 집으로 가고 있는데 생활 쓰레기가 모여 있는 내리막길에서 순식간에 넘어졌다. 옆을 보니 업소용 기름통이 있어 기름에 미끄러진 건지, 투명한 비닐이 있어 그걸 밟은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무진장 아팠다. 골반뼈와 무릎이 아파 일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바지의 무릎 부분이 튿어지고 피가 뱄다. 일어나질 못하니까 당황스러워서 좀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행인이 없었고, 전화할 사람도 없었다.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 닫은 카페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편의점에 절뚝거리며 가서 약을 몇 개 샀다.



3. 200km 넘는 거리의 출장을 갔다.

  힘든 일이 아니고 일상적인 일인데도 너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언제 다시 이런 출장을 다니겠어, 하며 기분을 좋게 하려고 애를 썼다. 웬만한 행정일과 운동같은 건 모두 미루고 잠을 좀 푹 자려고 했다. 몸이 무거웠다.



4. 동해에서 춘천으로, 춘천에서 서울로 당일치기

  회사가 춘천 소재기 때문에 춘천에서 일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출장을 갔다. 그런데 이번 서울 출장은 처음 가는 곳이고, 상담 받을 분들의 상태도 가늠이 잘 안 되었기 때문에 너무 긴장이 되었다. 스트레스 검사 기계와 감정카드, 서류와 기념품들을 이고 지고 갔다. 거의 3년만에 서울의 출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10.29. 이태원 참사일로 인한 건지, 사람 많은 게 다소 무섭고 심적 압박감이 들었다.

  게다가 일 내용이 너무 힘들었다. 하루종일 울었다.



5. 다시 서울->춘천->서울

  혼란스럽고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춘천에서 반나절 일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오후에는 바로 서울집으로 돌아왔다. 3시간 정도 잠들었는데 모든 게 새카매졌다. 기억을 지워주는 요정님이 나타나 나의 기억과 감정을 지워 주었다. 부작용은 너무 멍해져버림.

  소고기와 버섯을 볶아 먹었다.



6. 휴일(1)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여자 배구 <흥국생명vs한국도로공사> 경기를 봤다.

  친구들과 만나서 놀았다. 아직까지 몸에 남아 있던 슬픔과 죄책감들이 씻겨짐. 배구 경기는 인천에서 있어 인천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다소 힘들었다. 아주 즐거웠고 매우 피곤했다.


7. 휴일(2) 누워 있거나 먹거나

  누워서 유튜브 보거나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만 마시고 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살았다.



Image: Photo by Isabella and Zsa Fisch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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