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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사과 May 31. 2023

엄마가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야

그렇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아니라 내가 빈소에 앉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엄마가 없다는 것은 너무 무섭고 실감이 안 나는 일이었다.


일단은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살아있는, 숨 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돌아가 시 전에 고통스러웠을 텐데, 엄마는 정말 힘들었을 텐데..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엄마 친구, 지인분들이 나를 볼 때마다 ‘아이고 ㅇㅇ아... 엄마가 너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니...’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찢어진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엄마가 마지막까지 걱정했을 사람이

누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고작 22살이었고,

다 컸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중, 고등학교 내내 나는 엄마를 제일 미워하면서도 엄마를 제일 좋아했다.


나는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었고

그걸 나눌 사람은 엄마가 유일무이했다.


오빠는 나를 싫어했고(?) 그러면서도 걱정했다고 하는데, 아빠나 오빠나 가족이니 할 수 있는 말이라며 듣기 싫은 말만 골라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엄마가 유일했었다.


그런 엄마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났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입관식 때는

엄마가 엄마 같지 않았다.

너무 차갑고, 차가웠다.

그때 알았다. 진짜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그렇게 여느 장례식 장처럼 3일장을 치른 후

30일이었다.


발인 날이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짧았다.


발인 날은 새벽부터 비가 정말 많이 왔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름이었는데도 이렇게 어두울 수 있나,

이렇게 비가 많이 올 수 있나 생각하면서

엄마와 함께 화장하는 곳으로 향했다.

화장장에서 정신이 나간 상태로 기다리다가 엄마의 관이 화장되는 시간이 됐다.


주변이 어두컴컴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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