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경 소장의 입시 이야기
학기가 시작되면서 중학교 고학년들의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시행과 2028 대입 개편안의 발표로 고등학교 선택이 더 중요해지면서, 어떤 고등학교를 가야 할지에 대한 상담이 매우 많아지고 있다. 내가 상담을 주로 하는 대치와 수성구는 자사고/특목고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학군은 아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출연으로 자사고를 설립하여 자사/특목 진학률이 지극히 높은 몇몇 지방의 경우 한 번씩은 고민하게 되는 주제인 듯하다.
한 해 수백 명의 중학생들의 고입을 컨설팅하면서, 또 그 아이들을 고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 컨설팅 하면서 어떤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어울리는지 고민해 볼 많은 기회가 있었다. 물론 학생 개인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른 정답이 있겠으나, 그중 보편적인 몇 가지 특징을 짚어보고자 한다.
(1) 머리는 좋으나 암기에 약한 경우
이런 아이들이 매우 많다. 머리는 좋아서 이해도 빠르게 하고, 고난도 문제집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월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중학교 내신에서 학원 레벨과 진도가 더 아래인 친구보다 성적이 낮게 나오는 아이들이 있다.
이해력과 문제해결력이 좋아서 어려운 문제를 빠르게 치고 나가지만, 암기를 하는 능력 혹은 체력이 부족하여 만점에는 이르지 못한다. '많이 맞추는 시험'에는 성과를 보이지만, '적게 틀리는 시험'에는 약하다.
공부를 보통 이상 한다는 학군에서 최고 등급(1등급)을 맞기 위해서는 통상 시험에서 최대 1~2문제를 틀리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암기에 약한 학생이라면 1등급은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일반고의 경우 시험에 킬러 문제가 거의 없어(강남 제외) 고난도 문제를 푸는 실력보다, 실수 방지 및 꼼꼼함이 성적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학생이라면 차라리 시험이 어렵고, 내신 성적보다 생활기록부를 중요하게 보는 특목/자사에 가서 어려운 시험에서 고난도 문제에서 성적을 방어하고, 기타 뛰어난 역량을 통한 생기부 활동으로 차별성을 강화하는 것이 입시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2) 특정 1~2개 과목에 강한 경우
생각보다 전 과목을 골고루 잘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 전 과목을 골고루 다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높은 가능성으로 그 학생은 전 과목의 능력치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암기능력'이 뛰어나서 어지간한 과목에서 압도적인 암기 능력으로 안정적인 성적을 유지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내가 경험한 일반고 1등급 초반대 학생들은 과목별 압도적 역량이 있는 경우보다, 전반적 암기 능력이 성적의 비결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암기능력이 없으면서 특정 과목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도 있다. 소위 '이과형'이라고 수학과 과학에는 꽤 높은 재능을 보이나, 다른 과목에서는 성적이 낮은 친구들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언어'에 강하여 중학생 때부터 3개 이상의 언어를 능통하게 하나, 다른 분야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일반고에 가면 1~2개 과목은 매우 좋은 성적이 나오지만, 그 이외의 과목들은 중위권 수준의 성적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일반고에서는 대학에 진학할 때 '성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개 과목의 성적이 높다고 하더라도, 다른 과목의 성적이 낮으면 평균 성적은 매우 낮게 떨어진다. 만약 수학이 매우 잘 되는 친구라서 수학은 1등급이 나왔지만, 다른 과목이 3등급 수준이라면 이 학생의 평균 등급은 2.5 정도일 것이다. 일반고에서 대학을 갈 때는 이 학생이 수학이 1등급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평균 등급이 2.5라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일반고의 수학 1등급이 수학에서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이 1등급이 그다지 높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본인의 분야에 적합한 특목고나 혹은 자사고에 진학한다면 훨씬 유리하다. 우선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과학고에 진학한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수학과 관련된 수업 시간이 훨씬 많아 성적 취득에 유리할 것이고, 과학고에서 수학을 상위권을 받는다는 것은 수학 실력이 매우 압도적이라는 증명이 되기 때문에 대학에서 '수학'이라는 과목의 실력만 가지고도 학생을 선발할 만한 유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사/특목 학생이 주로 진학하는 전형들은 성적이라는 '정량적' 지표보다 생활기록부 등 기타 '정성적' 지표들을 유의미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소수의 과목에 확실한 재능이 있는 경우 분명히 유리하다.
(3) 과기원에 진학하고 싶을 경우
KAIST, UNIST, DGIST, GIST 등...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원' 중 학부를 운영하는 곳이 있다.
상위권 과기원의 경우 서울대 급으로 취급되며, 그중 하위권이라고 불리는 곳들도 서성한 급으로는 여겨진다.(개인적으로는 과기원들은 장기적으로 모두 SKY급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과기원들은 교육기관의 역할도 있으나, 연구의 목적이 더 강하기 때문에 교육 과정에서도 실습 유형의 수업들을 다수 진행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실습 경험이 있는 과학고/영재학교 학생들을 선호한다.
자사고/특목고에 입학한다고 무조건 대학을 잘 가는 것은 아니지만, '과기원'이 목표라고 한다면 과학고/영재학교는 만약 붙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유리한 성과를 낼 것이다.
(4) 희망 학과에 '덕후'적 기질이 있는 경우
소위 중학생 때부터 선호하는 분야에 대한 '덕후'와 같은 기질이 있는 학생이 있다.
중학생 때부터 곰팡이를 키운다던가, 오만 전투기의 사양을 외우고 다닌다던가 하는 학생들 말이다.
이런 학생들은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어지간한 학부 2학년 학생들을 넘어서는 수준의 해당 분야 전문 지식을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가 단순히 암기 중심의 교육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에 따라 이렇게 희망하는 분야의 높은 지식적 완성도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대입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생활기록부/수행평가/면접의 입시에서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일반고의 경우 학생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높지 않고, 교육부에서 배부한 보편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특목고/자사고는 학생들의 수준이 높고 학교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학생이 특정 분야에 갖고 있는 깊은 수준의 지식을 발산하고, 또 성장시키며, 관련된 이력을 생활기록부 등에 기록할 수 있는 수단과 실력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만약 중학교 3학년 자녀가, 자신이 흥미 있는 분야에서 대학교 1학년 전공 도서를 읽을 수준이 된다면(혹은 대학교 2학년 이상 수준의 교양서적을 읽을 수준이 된다면) 자사고/특목고를 검토해 보길 바란다.
(5) 너무 공부를 잘하는 학생
이건 너무 당연한 문제이다.
만약 너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 일반고를 가면 전교 1등은 따놓은 당상이라면 자사고/특목고를 검토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일반고 전교 1등이더라도 지방 의대를 학생부 종합으로 합격하지 못하는 사레는 매우 많다. 하지만 자사고 전교 1등이라면 명문대 의대 학생부 종합도 따놓은 당상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학교에 따라 '전교 1등'이 가지는 위상이 다르기에, 학생의 실력이 일반고의 경쟁 수준을 뛰어넘는다면 과감하게 더 높은 경쟁의 분야로 보내주는 것이 현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일반고에서 애매하게 3~5등 정도 할 실력이라면 일반고를 가는 것이 훨씬 나을 때도 많다. 이 분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자사/특목에 진학했다가 등수가 너무 밀려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매우 많으니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여러 상담에서 만났던 대표적인 사례들을 한 번 살펴보았다.
고등학교가 새로운 기회가 되는 학생들도 있고,
반면에 좌절의 시작이 되는 학생들도 있다.
여러 사례에 대해 접하고, 부모와 자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좋은 선택을 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