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지면 만물이 소생하기도 하지만, 우리 중2 아이들의 자신감도 놀라울 만큼 자란다. 왠지 여기서 뛰어내려도 스파이더맨처럼 착지할 수 있을 것 같고, 저기까지 도망가면 선생님 눈에 안 띌 것도 같고, 오늘은 드디어 내가 저 친구를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그런 근자감이 뿜뿜 샘솟아 어깨를 치고 올라올 때쯤, 이미 아이의 손은 상대의 턱에 날아가있다. 분명 별 것 아닌 말에 욱했던 장면은 남아있는데 그다음 장면은 친구와 엉켜 데굴데굴 구르는 걸로 넘어와있다. 이게 뭐지? 하는 찰나 또 손이 날아오고 발이 올라온다. 개싸움이다.
점심시간, 신발이 뭐가 이상했는지 발이 까져 보건실을 찾았다. 들어가는 순간 보건선생님이 기다렸다며 나를 반기신다. 그럴 일이 뭐가 있지? 우리 반은 요보호자도 없는데? 짧은 순간 머리를 굴렸다. 아니나 다를까, 개싸움의 흔적으로 찾아온 아이들 이야기다. 목 근처에 손톱으로 긁혀서 처치를 해주셨단다. 자세히는 모르나 싸웠다고 전해 들었다신다.
점심을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서 밥 먹고 교무실로 오라 일렀다. 번호대로 먹으니 16, 17번. 바로 옆자리다. 실컷 싸우고 옆에 앉아 밥 먹는 게 우습다. 나도 기가 찬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별 게 없다. 그동안 서로 투닥거려 감정이 좋지는 않았는데, 오늘 체육시간에 몸이 서로 닿으며 기분이 더 상했고, 한 명이 발로 걷어 차니 다른 한 명이 못 참고 일어나 싸우기 시작한 거다. 갑자기 우와락 붙은 아이 둘을 다른 친구가 빛의 속도로 뜯어말려 싸운 줄도 모르는 우리 반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상처가 생기고 난리가 났다.
중간고사가 다음 주라 아이들이 예민하고, 특히 둘 중 한 명은 불안이 많이 높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모습이라 마침 어제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통화와 문자로 연락을 해 더는 부담스러울 듯하여 상담선생님이 대신 조심스레 보호자에게 아이 상태를 전했다.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루가 지나 일이 터졌다.
아이들은 절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다. 곧 죽어도 억울하다 하니 체육선생님께선 학폭신고를 할 생각이라셨고, 학교종결사안이 될지 교육청까지 갈지는 또 그다음 문제다.
덕분에 우리 반은 종례시간에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에 대해 잔소리를 실컷 들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게끔 길러내기가 이렇게 힘들일인가. 맞다, 생각해 보니 정말 힘들었다. 내가 한동안 담임을 하지 않아 잊고 있었다.
올바른 것을 단호하게 가르치고, 꼰대소리를 듣는게 낫다. 매일 아침 전달사항을 빙자한 잔소리를 너무 늘어놔 자제 중이었는데, 해야할 말은 꼭 하는 게 맞는 거였다. 내가 쉬면 쉰 만큼 딱 그대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