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다소자극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부의 사례이니 일반화하거나 확대 해석하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작년부터 서울시내 중학교 1학년들에게 모두 크롬북(이하 디벗)을 지급했다. 교과별로 수업에도 활용하고 각종 설문이나 온라인 과제들을 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히 사용 중이다. 나의 경우엔 각종 지형을 이해시키는 데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명과 암은 공존한다. 충전을 해오지 않은 디벗은 무용지물이 되고, 설치해 놓은 충전함은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디벗들이 있어 불만이 생기며,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본래의 용도를 벗어난 사용이 빈번해진다.
점심시간, 급식지도를 끝내고 잠시 앉아 일을 하고 있으니 두 아이가 나를 급히 찾는다.
"선생님, ♤♤이가 디벗으로 인스타 해요!!"
이르기도 잘 이른다. '모든 것은 담임에게'를 부르짖었더니 깔때기처럼 담임에게 정보가 모인다. 부리나케 교실로 들어갔다. ♤♤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디벗을 반쯤 열어, 몸으로 잘 가린 채 디벗의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깜짝 놀라 경기하듯 ♤♤이는 나에게 디벗을 넘겼다.
열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인다. 학습 외의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 디벗을 열었다. 마저 끝내지 못한 인스타 다이렉트 메시지 창이 나를 반긴다. 학생의 사생활을 굳이 알고 싶지 않아 흐린눈 모드로 쓱- 읽었다.
으..응? 어어어어어???!
많은 부분을 지우고 몇 단어만 남겨두었습니다. 이건 별로 높지 않은 수위의 대화입니다. 모자이크 속의 단어들은 매우 놀랍고 유쾌하지 않아요.
지금 내가 뭘 본거지. 아니, 맞게 본 건가? 순간 내 눈에 스쳐간 글자들이 놀랍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고, 의견을 묻기도 하고, 취향을 나누기도 한다. 확인에 확인을 해도, 이건 분명 15살의 대화다.
조용한 교무실에서 놀라 소리를 질렀더니 전부 뛰어왔다. 왜 그러냐 해 열려있는 화면을 보여줬더니 다들 한 마디씩 거든다. 상대가 어른 아니냐, 혹시 사진이 오간 건 없냐, 음성이 있는데 이것도 확인을 해보자. 한 달 치 정도의 메시지를 확인했고, 둘 사이의 대화에서 기절할만한 수위의 것들이 더 나왔다.
종례 후 아이를 남겨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이는 무너진 얼굴로 제발 엄마에게만은 말하지 말아 달라 했다. 일단은 안심시켜야 할 듯해 어린이날까진 나 혼자만 마음에 품고 있겠다 말했다. 그리고 나선 너희가 주고받은 대화 속의 주제가 결코 그렇게 가벼운 것만은 아니며, 무엇보다 나는 건전한 만남이길 바란다 덧붙이곤 마무리지었다.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순되지만 아이를 보내고 바로 어머님께 전화를 했다. 그리곤 학교를 좀 오시라 말씀드렸다. 사실 너무 당황스러워 밑도 끝도 없이 학교로 나오실 수 있나요?부터 내뱉었다. 내 입으로 전하기조차 거북한 단어들과 내용이 많아 어떻게 걸러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냥 남자친구가 있고, 둘 사이가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전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꼭 모른 척해주시길 당부드렸다.
어머님을 만나면 적당한 수위의 대화를 보여드릴까 싶다. 이 정도보다 더 심한 대화가 오갔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혹시 원하시면 더 보여드릴 수는 있다 말하려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끝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을 수 있고, 그 정도까지 자식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솔직히 오늘 나는. 매우, 많이, 아주, 기분이 좋지 않다. 나도 사람인지라,무슨 죄로 적나라함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이 난리를 겪나싶어 하소연을 늘어놓게 된다. 알고싶지 않았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