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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May 03. 2023

오늘 무슨 날인가!

-쉴 틈 없이 촘촘히도 바쁩니다-


조회시간 3분 전, 코로나19 안내방송이 나온다. 일찍 들어가 아이들을 살핀다. 역시 아직 오지 않은 3명은 종이 침과 동시에 아슬아슬 들어온다.


1교시는 안전체험교육이다. 수련회를 앞두고 군집피해방지부터 심폐소생술까지 총망라한 교육이다. 분명히 풀과 가위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21명 중 12명이 가져오지 않았다. 당연히 이럴 걸 예상해 미리 교육준비실에서 가위와 풀을 빌려놨다. 15년 차의 짬밥이다.


점심시간, 옆반 남학생 한 명이 우리 반 여학생을 이유 없이 때려 찾아왔다. 이유가 없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 때리면 아플 걸 알면서, 등등으로 혼을 내고 사과를 시켰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다행히 서로의 마음을 움직여 잘 해결됐다.


급식지도 도중 우리 반 아이 하나가 대뜸 묻는다. "선생님, 반티 꼭 해야 돼요?" 수련회에서 함께 입을 반티를 위해 아이들이 의견을 조율 중인데  그게 싫은가 보다. 왜 싫냐 물으니 답이 돌아온다. "관종같은 옷 입기 싫어요."  회장은 우리 반이 너무 분열된다며 화를 내고, 다수결로  결정된 디자인을 몇 명이 우겨 바뀌었다며 울분을 토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민주적으로 해결하길 바라 개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담임 독재정치로 흘러간다. 결국 내가 반톡방에 반티를 할지 말지부터 투표하자고 글을 올렸다.


5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 아이 세 명이 교무실로 뛰어온다. 누가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았단다. 게임용 공기계라는데, 공기계를 제출하고 본휴대폰을 안 내는 건 봤어도 공기계를 안 내는 건 또 처음이다. 가방에 넣은 줄 몰랐다고 말하는 걸 한참 듣고 있다 벌점 3점을 부여하고 끝냈다.


5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니 다른 반 남학생이 우리 반  구가 자기를 때렸다며 찾아왔다. 우리 반 아이를 불러 왜 때렸냐, 아플 걸 몰랐냐, 몸으로 놀지 마라, 소리가 끝이 없다. 돌아서면 제자리라는 걸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안 할 수 없어 고장 난 라디오를 자처한다.


쉴 틈이 없다. 하루종일 입을 다물 겨를이 없다. 글 속에 빠져있는 시간은 죄다 수업 시간이다. 수업 시간엔 수업하느라  떠들고 쉬는 시간엔 잔소리하느라 떠든다. 나중엔 영혼 없이 입만 나불대는 느낌이다. 요즘 세상이 그런 건지, 코로나라 남과 부대낀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건지,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른다. 친구고 교사고 상관없이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다.


한 아이의 말로 마무리할까 한다. 나의 과목인 사회를 이렇게 평했다. "내용은 별 거 없는데 어려운 말로 써 놓은 거잖아요." 내 면전에 대고 한 말이다. 그래도 필요없다곤 안 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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