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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Sep 28. 2023

너를 지켜주고 싶어

- 정말 소중한 너 -

* 학교 현장에선 요즘 매우 빈번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마음이 우울한 상태라면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한 아이가 아프다며 조퇴를 했다. 어머니가 1교시를 버텨보고 그래도 힘들면 조퇴하라고 했대서 통화를 하곤 집에 보냈다. 다음날 학교에 왔길래 괜찮냐 물으러 아이 자리로 갔다. 어제 집에서 좀 쉬었냐, 배 아픈 건 괜찮아졌냐 묻던 와중, 아이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져 점상으로 멍이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마스크를 썼음에도 눈에 들어올 정도라 얼굴이 왜 그러냐,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냐, 많이 아픈 거냐 물었다.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넘어가려 해 "애 낳을 때 진통 오래 하신 분들이 얼굴에 그렇게 멍들던데~"라며 농담처럼 나도 넘겼다.


1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찾아왔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응, 해~"라고 대꾸하자 긴히 하고 싶은 말이라며 조용한 데로 가고 싶어 해 장소를 옮겼다.


"선생님, 그.. 제가 있잖아요. 사실은.. 어제 좀 안 좋은 행동을 했어요."


멍해졌다. 곧바로 아이의 목을 살피니 멍자국이 있다. 안 좋은 행동이, 정말 그 행동이 맞았다. 아니, 어떻게. 어쩌다. 왜, 무엇이. 그렇게까지. 무서움에 압도당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생명존중교육, 자살 징후 파악, 그동안 들었던 수많은 교육과 연수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아내는 데 급급했다.


무슨 정신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른 채 쉬는 시간 10분을 보내고 2교시 수업에 들어갔다. 기계적으로 수업 내용을 뱉으니 10여분이 남는다. 아이들에게 교과서 탐구활동을 풀라고 시켜놓곤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에 따라 어떻게 아이를 보호해야 할지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순간조차 손이 떨려 펜이 미끄러졌다.


수업 끝종이 치자마자 상담실로 달려갔다. 상담선생님께 상황을 전하고 우선은 아이가 학교에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하니 점심시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또 수업에 들어갔다, 교감/교장선생님께 보고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새벽 2시에, 방에서 혼자, 헤드셋 줄을 목에 감았다 했다. 우울감은 늘 있고 그냥 태어나서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1학기 상담 시 육아우울증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엄마와 심하게 다투곤 실제 행동까지 이어졌다 했다. 이번이 작년에 이은 두 번째 시도였다고도 했다. 가정 내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고, 똘똘하고 기민한 아이의 성향은 무딘 가족들 사이에서 버티기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졸라도 죽지 않아 그냥 자자, 그렇게 멈추게 되었다는 아이의 말이 기어코 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며 잘했어, 정말 잘했다, 그 말 밖에 못했다. "나는 네가 안전한 게 제일 우선이야, 다른 사람은 모르겠어, 너의 부모님이 어떻든, 너의 동생들이 어떻든, 나는 네가 이렇게 내 앞에 있었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에 아이가 마음을 더 열어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상담에 동의하고 보호자에게 알리는 것까지 허락했다.(물론 허락이 없어도 당연히 알려야 하고, 또 이미 알렸다.)


오후가 되어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고 아이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가정 내에서 아이가 부담 갖고 있는 부분을 해소해 주길, 또 당분간 특히 신경 써야 할 것들을 당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응급실로 가서 검진을 고 소아정신과 협진까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안내하곤 아이와 함께 귀가시켰다.


다음날 아이는 멍이 더 심해져 학교에 오지 못하겠다 연락이 왔다. 어머니는 같이 자고 먹고 계속 함께 생활하고 있다 했다. 내원했던 병원에 소아정신과가 없어 진료를 못 받았고, 119를 태워 다른 병원으로 보내주겠다 했으나 아이가 거부해 가지 못했다 했다. 아이가 매우 위급하고 응급한 상태라 꼭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당일 진료가 가능한 정신과의원을 소개하고 아이의 안전을 부탁하는 것으로 담임으로서의 내 일이 일단락됐다.






사이 학교에선 생명존중위원회를 열어 아이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의논했다. 24시간 이내에 구두로 교육청 보고를 마쳤으며, 다시 3일 이내에 서면 보고도 완료했다. (교육청에 관련 지원 예산이 있었는데 그게 6월엔 가에 소진되었다니, 요즘 얼마나 위태로운 학생들이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학생 상담과 보호자 상담, 이후 안전을 확인하고 병원 진료까지 권유했으니 학교로서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사실 집에서 있었던 일을 학교가 오히려 먼저 파악해 부모에게 거꾸로 전달하는 경우가 흔한 것은 아니라 더 급박하기도 했다.


열다섯 살 삶의 무게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수 있는지, 참 비통했다. 아이가 꺼낸 말 한마디마다 비극이 켜켜이 쌓였다. 내 경험이 너무 제한적이라 깊이 공감할 수 없음에 슬펐고, 한편으론 별 편견 없이 꽃밭에 사는 나라 믿고 먼저 말해준 건가 싶기도 했다.


"말해줘서 고마워, 정말 너무 고마워. 나같이 허허실실 한 어른에게 마음을 열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 순간 살아있는 너에게 가장 감사한다."


살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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