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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Sep 30. 2023

너의 0점이 100점이 되길

- 시험 종료령과 함께 비명이 울렸습니다  -


요즘 학교의 일들이 자주 기사화된다. 15년간 겪어온 많은 일들을 주변에서 자세히 알게 돼 불쌍한 눈길을 더욱 자주 받는 느낌이다. 마냥 좋지만도, 또 나쁘지만도 않다.


https://naver.me/G2xhCFOB


중학교 1학년이 자유학년제가 되면서(서울만 그런 것 같은데, 확실친 않다) 2학년이 되어서야 정규고사를 본다. 초1부터 중1까지 7년간 그런(?) 시험을 보지 않다,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구체화된 점수가 나오는 시험에 맞닥뜨리게 된 아이들은 여러 종류의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대개 학생과 보호자 모두 영어와 수학시험에 많이 민감하고, 특히나 수학은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교사들도 예민하게 감독을 한다. 예비종이 치기 전부터 입실해 아이들을 정돈시키고, 예비종이 치면 시험지와 omr카드, 서술형 답안지 배부를 시작한다. 시험 시작종이 치자마자 문제를 풀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날도 1교시가 수학과목이었다.  3학년 감독에 배정되어 매의 눈(부정행위는 예방이 최고!)과 치타의 발(누구보다 빠르게 답안지 교체와 수정테이프를 가져다 줌!)을 장착했다. 서술형에 연필로 쓰는 학생이 없는지 (연필로 쓰면 0점 처리), 수정테이프를 사용하진 않는지(역시나 서술형에 수정테이프를 사용하면 0점 처리), 시험 종료 5분 전 방송이 나왔을 땐 인적사항 확인과 밀려 쓰진 않았는지 살피라고 한번 더 주지 시켰다. 3분 전까지도 답안 마킹을 안 하고 있는 학생이 보여 내 속도 같이 탔다. 마침내 종료령이 울리고 큰소리로 펜을 내려놓으라 하고 손머리를 시켰다. omr과 서술형 답안지를 모두 걷어 번호대로 매수 확인까지 마치면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답안지를 열심히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5분 동안 3학년 아이들을 교실에 잡아놓으라 해 무슨 큰일이 터졌구나 싶었다. 2학년에서 뭔가 사고가 있구나, 시험시간이 5분이나 늘어날 정도면 무슨 일이지, 무사히 잘 끝나야 할 텐데, 걱정이 됐다. 5분의 시간은 금세 흘렀고 답안지를 제출하러 내려가 들어보니 2학년 수학문제 중 오류가 있어 5분의 추가시간을 주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오류를 시험 도중에 알아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곤 나오려던 찰나, 누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2학년 5반에 땡땡이요... 땡땡이가 답을 하나도 마킹을 못했어요. 종 치자마자 답을 못 썼다고 소리를 질렀는데.."


아이의 답안지를 확인하니 인적사항 외엔 텅 비어있다. 서술형도 쓰다 만 채였다. 우선 알겠다고 하곤 아이를 만나러 교실로 올라갔다. 아이는 당연히 패닉이었다. 저러다 다음 교시 시험도 망치겠다 싶어 아이를 붙잡고 일단 지나간 건 잊고 남은 한 시간 시험을 잘 보자 이야기했다. "이것마저 못 볼 순 없지 않니"라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잔인한 말을 천연덕스럽게 뱉었구나 싶다.


2교시 시험까지 다 끝나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낸 후,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학 시험 중에 문제 오류가 있었고 5분의 추가 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땡땡이가 마킹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선택형은 0점 처리가 될 것이고 서술형은 써낸 답만큼 점수를 받게 된다 이야기했다. 보호자는 격앙되어 왜 0점 처리가 되느냐부터 시작해 선생님들이 그렇게 잔인하게 해야만 하냐까지 다양하게 항의했다. 부모라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속상하신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건 공정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평가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예외도 둘 수 없다 설명했다. 또한 아직 중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이런 실수를 절대 하지 않게끔 반면교사 삼으면 되지 않겠냐, 수능에 가서 실수를 하는 것보단 지금이 낫지 않겠냐, 그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사실 요즘 교사들은 시험 시간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시험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수능에 준하여 실시되는데, 수능에선 교사의 개입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수능 감독은 2명(탐구시간만 3명)으로 한 명은 정감독, 다른 한 명은 부감독이 된다. 정감독은 앞쪽에서 시험 진행을 전반적으로 주도하고, 부감독은 뒤쪽에서 학생들의 불편사항을 살피는 게 주 업무다. 중학교 교사인 나는 주로 부감독인데 수능감독에 갈 때마다 '나는 가구다, 나는 공기다'를 마음에 되새긴다. 모든 안내는 방송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사가 말할 필요도 없고 굳이 말을 할 이유도 없다. 방송에서 원서 확인을 한다고 하면 지시에 따라 얼굴과 신분증 및 원서를 대조하며 확인하고, 답안지와 문제지를 나누어주라고 하면 역시나 지시에 따라 답안지와 문제지를(짝수형과 홀수형을 잘 확인해) 나누어 주면 된다.


학교 시험은 수능만큼은 아니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다만 어느 교사는 답안지에 마킹하라고 종용하고, 어느 교사는 내버려 두고, 그렇게 감독의 기준이 다르면 민원의 소지가 된다. 그래서 학교 정규고사에서도 수능처럼 방송을 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시험 종료 5분 전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답안지에 인적사항이 제대로 기입되었는지 확인하고, 서술형 답안지는 검은색 볼펜으로 작성되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기 바랍니다."와 같은 방송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반 아이는 별다른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는 날 아이를 따로 불러 진짜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시험은 잘 알고 잘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푼 답을 잘 옮겨 적는 것까지 잘해야 잘 보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시간 관리를 잘해서 무조건 10분 전에는 답안을 다 마킹하도록 해라, 그런 조언을 건넸다. 보호자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면서 많은 위로와 격려를 당부하곤 전화를 끊었다.


곧 2학기 중간고사다. 아이가 이번엔 실수 없이 시험을 치르기를 응원하고 있다. 시험 전에 한번 불러 실수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 이번엔 진짜 잘할 수 있다고 무심히 툭, 건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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