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민원에 시달리는 10월이다. 나도, 내 앞자리 선생님도, 내 옆자리 선생님도, 위층 아래층 교무실마다 선생님들 모두, 그러다 교감선생님도, 결국엔 교장선생님까지.
담임선에서 좋게 잘 해결해보려고 하면 꼭 담임의 권한이 뭔지 묻고, 아이랑 이야기 나눠보시고 연락 달라하면 하교도 전에 다시 전화해서 따지고(애 휴대폰은 내가 가지고 있음), 본인이 화난다고 자퇴시킨다 홈스쿨링한다(의무교육인데) 담임에게 안 해도 될 이야기를 하고, 아빠랑 통화하는데 엄마가 옆에서 소곤소곤 코치하는 소리가 다 들리고, 다음날 엄마랑 통화 중에 하실 말씀 있으면 직접 하셔라 어제 다 들렸다 했더니 "그렇죠. 제가 옆에 있었으니까요."라고 맥락 파악 못하는 데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말을 하고, 이미 지도했는데 똑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연락한다 말했는데도 우리 아이를 찍어서 문제 아이로 보고 있냐는 말을 하고, 양쪽 모두가 인정한 잘못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교우관계 단절이라는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나도 옛날처럼 "네, 네." 하는 교사가 아니라 "무례하시다, 존중받지 못한다 느낀다, 격앙되어 화내시지 말고 하실 말씀 정리하셔서 다시 전화하시라, 지금은 답변드리고 싶지 않으니 10분 후에 전화 달라." 등등 다양하게 악성민원을 쳐냈고 정중하게 사과도 받았지만 기분은 더럽다. 어제 아빠는 사과하고 오늘 엄마는 도돌이표니, 진짜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요즘 하도 교권이 어쩌고저쩌고더이상 교사들이 겪고만 있지 않는다는 걸 봐서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에 앞서,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식을 내가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굳은 믿음과 깊은 신뢰를 갖게 되는지 너무 궁금하다. "우리 애랑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애는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보호자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그렇게 되는 건가. 나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내 자식을 100% 다 안다고 어떻게 확신하게 되는건지, 정말 대단하다.
요즘 초-중등에서 악성민원을 넣는 보호자들의 연령대가 내 또래다. 웃긴 건 모두 토씨하나 안 틀리고 같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 애는 제가 잘 아는데 그렇지 않다, 선생님이 잘 모르면서 애를 문제학생처럼 몰고 간다." 예전엔 노골적이진 않았는데 요샌 오히려 듣는 내가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적나라하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6차 교육과정과 이해찬 1세대 시절의 교육이 뭐가 잘못됐나 싶다. 인권이 대두되면서 두발자유화, 교복자율화 등등의 이야기를 학창 시절에 배우지 못하고 듣기만 했는데(물론 대학에서 잘 배워 졸업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혹시 내가 불편한 건 잘못되고 틀리다는 것과 동격이라 생각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너무 답답해고등학교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우리가 불합리함을 많이 겪었던 세대라 참지말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쳐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뭘 참지 않아야하는지는 못 배웠나보다라고 자조하며 대화를 마쳤다. 정말,다들 자신부터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