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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Nov 03. 2023

사과

- 상대가 기분이 나쁠 땐 사과를 해야죠 -


얼마 전, 교장선생님께서 무성하게(?) 자란 해바라기 아래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해바라기 사진전"을 여셨다. 학급별/개인별로 자유롭게 패들렛에 사진을 올렸고, 오늘 상품을 나눠줄 학급과 아이들을 골라달라 하셨다.


패들렛을 열어 사진을 훑어보던 중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평소 뜨뜻미지근한 친구(이전글 "무례함과 싸움"의 주인공)인데 눈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표정으로(마스크를 써서 눈만 보이지만) 찍은 사진이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추천 명단에도 올리고 인쇄도 한 장 해 학급 칠판에 붙여놓고 왔다.


종례를 하러 들어갔더니 맨 앞에 앉은 그 친구가 버럭 화를 낸다. "사진 왜 붙였어요?", "저한테 시비 거세요?", "너무 화나는데요.", "제 허락 안 받았잖아요.", "선생님이 잘못한 거잖아요."


워낙에 평소에도 말버릇이 좋지 않은 덕에 매일같이 혼나는데, 오늘도 결국 똑같은 이유로 나한테 혼나기만 하고 끝났다. 사실 생각해 보면, 공개된 장소에 올라왔던 사진이고 아무리 담임이 좋은 의도로 붙여놨다한들 본인이 원치 않았다면 내 잘못이 맞다. 그럼에도 사과가 뒷전이 되어 혼만 잔뜩 맞고 간 친구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먼저 아이에게 개인톡을 보내 정말 미안하다 전했다. 설왕설래의 과정을 지켜본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월요일 조회시간에 이야기하겠지만) 단톡방에 미리 사과를 했다. 보호자께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잘 다독여달라, 죄송하고 감사하다 전했다.






그런데 문득 내가 그 순간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례함이야 익히 알고 있었던 건데, 그렇게 뚜껑이 열려 아이를 몰아붙인 이유가 뭐였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잘 안 됐다.


그러다 오늘의 이 부끄러움을 sns에 고백한 글에 한 제자가 남긴 댓글을 보고 내가 왜 그랬는지 깨닫게 되었다.


낭만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담임교사가 학생에게 갖는 애정 정도는 알아챌 수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데에 무력감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너를 많이 귀여워하고 있다를 표현한 것에 분노로 응수를 하는 아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함께 화를 냈다.


도 사람이라 매일 듣는 아이들의 가시 돋친 말에 좀 지쳤나 보다. 유독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급이고,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아이들을 대하는 게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뒤에서 담임교사 욕하는 게 일상인 청소년들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내 귀에 흘러들어오면 감정을 갈무리 짓는 게 어려웠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면 교사도 함께 변하는 게 맞다. 흘러간 옛 시절을 그리워하면 라떼꼰대교사가 된다. 무례함의 종합세트에도 학생에게 사과를 받지 못했지만, 교사는 직접 한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잘못에는 사과를 하고 다시 하지 않는다는 걸 배울 수 있다면 성공한 거다.


다만, 요즘 아이들이 나의 불편은 남이 잘못한 거고, 남의 불편은 그 남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많이 걱정된다. 내 앞에서 당당히 사회-역사는 싫어한다, 하기 싫다, 배워서 쓸 데가 없다, 말한다. 필요 없는 과목을 왜 가르치고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며 수업시간 내내 다. 그 친구들의 논리는 학교와 교사와 교과가 이상한 거다.


솔직히 모르겠다. 상대가 기분이 나쁜 것에는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해야 한다 가르치니 실천했을 뿐이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다가도, 또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어른이고, 선생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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