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무언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반려견을 오래 키운 경험이 있어 반려견을 입양 할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동거인(지금 잠시 옆지기의 곁을 벗어나 사촌 동생과 살고 있다)이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데에다, 동거인의 본가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중이어서 혹시라도 반려견의 냄새가 뭍어 나는 것을 우려 했다(본가의 고양이들이 낯선 동물의 냄새를 맡고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걱정했다). 또한 내가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반려견과 함께 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본가에 살 때의 이야기였다. 즉, 반려견의 주 양육자가 엄마였다는 소리이다. 나는 끽해봐야 예뻐해주는 것만 할 줄 알았지 반려견의 기본 생활 관리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이런 점들에 의해 반려견을 입양하는 것은 무산되었다.
두번째로 고려 했던 대상은 햄스터였다. 햄스터는 내가 키워 본 적이 있고, 관리도 내가 도맡아 했었기에 충분히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동거인이 반대를 외쳤다. 우선 햄스터가 야행성 동물이라는 것이다. 둘 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에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편인데, 야행성 동물이 집에 같이 있으면 아무래도 신경 쓰인 다는 이유였다. 같은 이유로 야행성인 소라게 입양도 반려 되었다.
세번째는 체리 새우 혹은 물고기였다. 동거인이 물고기를 특히 물고기의 감기지 않는 눈을 무서워 했으나 내 방에서 키운다는 조건으로 허락 해 주었다. 하지만 이내 곧 다른 상상을 하게 되었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죽으면 어떻하냐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혹여 그런 경우가 생기면 내가 잘 처리 하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동거인은 질색 팔색을 하며 절대 안된다고 난리를 쳤다.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안되고 변기에 내려 보내는 것도 안된다며 절대 안되를 외쳤다.
그렇게 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여기엔 동거인의 반대 뿐 아니라 내 생활 패턴의 문제도 한몫했다. 나는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나 집에 들어온다. 집에선 거의 잠만 자는데, 여기에 동물을 들이면 그 동물이 하루 종일 좁은 집에 갇혀 외롭고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나는 지금 동물을 키울 준비가 안되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동물 입양이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눈을 식물로 돌렸다. 내 눈에 들어온 식물들은 내 거주지와 생활 패턴을 고려해 음지 식물로 정했다. 고사리나 스킨답서스 그리고 이끼까지 음지에서도 잘 자라면서도 푸릇함을 잃지 않는 식물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식물이라 해도 입양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 식물을 입양한 것은 우연이었다. 버스 타고 집에 가던 길에 창밖으로 플라워페스타가 열리는 것을 목격했고, 바로 버스에서 내려 홀린듯 입장했다. 여기서 나는 운명의 식물을 만났다. 바로 서리이끼이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초록초록한 서리이끼는 단숨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오밀조밀한 생김새도, 작지만 강렬히 내뿜는 생명력도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더욱이 마지막 남은 이끼라는 말에 나는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서둘러 집에 와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니 습기를 머금은 서리 이끼가 활짝 피어났다. 내 얼굴에 웃음꽃도 피어났다.
이끼를 입양하고 나서 나의 하루 일과에 이끼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추가 되었다. 매일 똑같은 모습인 듯 하지만 매일 작은 차이를 보였다. 물을 가득 머금은 날은 유독 초록빛이 강해졌고, 건조한 날에는 잔뜩 웅크렸다. 나는 내가 관심 주는 만큼 생명력을 뿜어내는 이 작은 세상에 온 마음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애정을 주는 만큼 더 반짝여지는 모습이 그 것만으로 내게 충만한 기쁨을 주었다.
이끼를 키운지 6개월 정도 되었다. 이끼에 대한 관심이 더 자라나 지난 금요일에는 테라리움을 만들러 인사동에 방문했다. 쌈지길 1층에 위치한 '해피에버에프터'에 방문해 자그마한 테라리움을 만들었다. 아이비, 두 종류의 피토니아 그리고 비단이끼와 깃털이끼를 조화롭게 배열해 나만의 테라리움을 만들었다. 내 행복이 작은 유리병 속에서 큰 세상을 만들었다.
이렇게 내 방 침대 곁에는 지금 두개의 이끼(테라리움)와 하나의 스킨답서스가 자리 하고 있다. 잿빛 세상에 초록빛이 들어와 내 세상을 알록달록하게 바꾸어 주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 마음의 충일감 역시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손바닥만한 이끼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관심을 쏟을 곳이 생겻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