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 Jul 24. 2023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Pleased to meet me




  지난봄에 이모들로부터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었는데, 이 막내둥이는 밥 쪼-금밖에 안 먹고 편식했으며 고추장만 좋아하고 겁 많고 조용했었단다. 뭐야, 나잖아? 기가 막혔다. 그럼 엄마는 그동안 어째서 내가 밥 쪼금밖에 안 먹고 편식하며 고추장만 좋아하고 겁 많다고 뭐라뭐라 했던 걸까? 전부 자긴데~?


  한편 지난달엔 서른넷 기념으로 아빠의 30대에 있었던 버짐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위치까지 똑같으면 이건 뭐… 묘지에 오는 가족 단위 추모객들이 다 따로 서 있어도 누가누가 가족이고 친척인지 그룹핑 가능한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인간들은 정말 뭔가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겐앤어겐앤어겐앤어겐! 내 인생에도 일어나고 있는 이 어갠앤어갠앤어갠이 조금 깨름하고 웃기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의 원제는 Pleased to meet me. 정말 귀여운 제목이다. 나 같은 문과에게 유전자와 세균을 이해시키는 뇌가 조화로운 작가가 쓴 책으로, 재미없는 장이 한 장도 없다. 유전자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들이 나의 식성, 사랑, 정치적 성향까지 결정하고 있었다는 내용인데, (라고 쓰니 너무 단순해졌는데 정말 신비로운 내용들 까득) 많은 것이 내 의지 밖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면서, 그것이야말로 겸손의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조화로움 그 자체다. 두 번 읽고 싶어지는 책.


“우리는 DNA에 의해 구축되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숨겨진 힘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생존기계다. 뒤로 이어지는 장에서는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니, 얼마나 적은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지식을 어떻게 이용해 자기 자신 그리고 우리와 이 세상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의 삶이 나아지게 만들 것인지(…)” p.45


  읽다 보면 어떤 사람의 어떤 특성에 대해서 탓하거나 비난할 근거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건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알게될 때 훨씬 너그러워지는 이 마음은 뭘까? 나는 내가 좀 더 흐물흐물 물렁거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안 쓰던 영역의 뇌와 몸 써가며 살아가는 너 응원한다.

‘속편 없는 원테이크’ 인생 즐겁게 살아라.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전하는 책이지만, 희한하게 ‘그럼 죽어야겠군’ 으로 향하지 않는다. 한계를 지어주는 듯하면서도 한계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하니, 의식의 범위 안팎으로 열렬히 살아있는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책을 끌어 안고 “이! 책! 너!무 재밌어!”하는 것 보장.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페셔널의 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