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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Nov 22. 2022

결혼은 여성의 인스타 피드를 바꾼다.

‘여자’가 되는 과정의 기록

한 선배를 존경했었다. 그 선배는 누구보다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야무졌다.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늘 단정한 옷을 입고 머리도 손톱도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선배가 결혼할 때는 그 결혼마저도 똑똑한 선배의 완벽한 인생 중 한 장면 같았다. 멋있어 보였다. 그리 가깝지 않았지만 늘 멀리서 존경하고 있었다.


몇 년 후 선배는 아이를 낳았고 선배의 sns는 아이의 일상으로 가득 찼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선배는 대학 강사가 되었고 몇 편의 논문을 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플랫폼은 선배의 sns가 아니라 구글 스칼라이다. 선배의 sns에서는 아이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선배의 삶이 분명히 좋아 보였지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선배의 논문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선배가 발표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왠지 생경한 기억 같았다.


뒤이어 왠지 마음이 아팠다. 선배의 아기가 받은 상장은 봤지만 선배의 논문 퍼블리시는 몰랐다는 게.

사실 이 선배만 그런 건 아니다. 내 주변의 언니들은 그렇게 멋있었는데, 누구보다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사람들이었는데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그 모습이 가려진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그게 속상하다. 맘이 아프다. 왜 여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결혼만 하면 “여자”가 돼버리는 걸까.


그들의 행복을 의심하거나 삶의 양식을 비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결혼/임신/출산 후 sns 변화의 양성 간 차이에는 사회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결혼한 친구들의 sns 변화를 보고 속상한 이유는, 남자인 친구들의 것보다 여자의 것들이 변화 폭이 크기 때문이다. 비단 sns뿐만이 아니라 삶의 양식도 변화한다.


결혼한 내 친구들은, 남편에게 아침밥 차려주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하고 쉬는 날에는 온 집안을 정리하고 식물을 말끔하게 관리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결혼한 남자인 친구들은 아내의 통제를 받는 걸 장난스레 언급할 뿐이다.


나의 야무지고 똑똑하던 친구들의 SNS가 살림으로 가득 차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사노동을 여성성의 수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매트릭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이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든 관습과 규범을 거스르면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연유로 내 친구들도 자신이 ‘주부’(사실 주부도 아니지만)로 또는 ‘아내’나 ‘엄마’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표준화된 감정을 요구받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를 보고 “여성을 억압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라 말했다.


나도 결혼하면 어떤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억압하게 될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런 속상한 걱정을 하면서 나의 미래를 상상한다.


다양한 모습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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