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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ul 30. 2022

반려동물을 소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상 저변에 깔린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

"저기요, 강아지 종류가 뭐예요?"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종종 듣는 말이다. 사실 우리 강아지가 누가 봐도 푸들같이 생겼기에 종종 듣는 것이지 믹스견을 키우는 친구는 거의 매일같이 듣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대답한다고 한다. 잉글랜드 러셀 테리어, 아이리스 소프트 테리어 등등 정말 아무거나 부른다고 한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사실 웃기지 않은 얘기다. 말하는 친구도 사뭇 진지했다.


우리 강아지에게 견종을 물은 사람은, 그 모습에서 질문의 의도가 빤했다. 반려견 놀이터 철장 너머에 서서 자신의 아이와 강아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 개는 어때?, 어머 쟤 너무 귀엽다." 그러다 우리 강아지가 눈에 포착된 것이다.


"푸들이요."

"그냥 푸들이에요?"

"토이푸들이에요."

"뭐 안 섞였어요?"


그 길로 토이푸들을 '사러' 갔는지 모르겠다. 이미 반려견 놀이터에서 견종을 고르고 있었으니.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런데 개중에 정확한 견종을 가리키며 키우고 싶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비숑이 키우고 싶다거나 도베르만 데리고 산책하고 싶다거나. '키우고 싶은 견종'은 시기마다 달라진다. 유행 견종이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요크셔테리어, 시츄가 유행이었다. 두 견종이 요즘 유기견 센터에 가장 많은 견종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강아지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사실 기이한 일이어야 한다. 물론 집의 크기와 자신의 생활양식, 활동 반경에 따라 견종별 성향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강아지의 외양을 보고 견종을 고르는 것은 자신의 욕구에 따라 개를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거래란 소유의 이전을 뜻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동물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의 변화는 동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동물과 반려伴侶 하고 있는가? 나도 개를 키우면서 늘 고민하고 있다. 정말 내 삶이 개와 반려하는 삶일까? 덥석 개의 견'주'가 되었는데, 그 이름처럼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지 반성이 된다. 개와 반려한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어떻게 지내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어렵다. 적어도 소유하지 않는 것은 확실할 터.


개를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거래, 학대, 유기 등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차원을 넘어 일상에서 개를 대하는 태도도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강아지는 원치 않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하는 것들도 많다. 예컨대 '예쁜 미용'을 시키는 것, 품종견과 교배시키는 것 등등. 단순히 강아지의 위생을 위해 하는 미용이라면 사실 30분 안쪽으로 끝나지만, 예쁜 털 모양을 만들려면 2시간의 가위질이 필요하다. 강아지가 낯선 공간에서 가만히 한 자세로 두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할 걸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서 샵에 보낼 수가 없다.


우리는 반려동물이라 말하지만 사실 일상 곳곳에서 개를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를 인간 세계에 끌어들인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의 생존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처음엔 내 행복을 위해 개를 데려왔더라도 내 눈 앞에 숨 쉬는 존재의 최대 행복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개는 행복할까? 가끔 물어보기도 하는데 대답할 리가 없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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