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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Feb 21. 2023

사람을 사귀고 친구를 만드는 일

이제는 내가 온전히 선택하는 것

새해가 되면 오랜만에 연락 오는 이들이 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오랜만에 연락하곤 한다.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묻고 새해의 평안을 기원한다. 그러다 보면 새해에는 약속이 물밀듯 밀려와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주간이 생긴다.


아마도 내가 지난 새해에는 논문을 쓰느라 모든 약속을 졸업 이후로 미뤘기 때문일 것이다.



1월에 말도 안 되는 약속과 스케줄을 감당하고 나니 2월은 절대 약속을 잡지 않으리라 절로 다짐하게 됐다.


하지만 극강의 외향형, 인류 사랑 인간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어느새 캘린더는 가득 찼고 약속 때문에 잠이 부족한 지경이 되어버렸다.


둘째 주가 지나갈 때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마다 한숨이 푹- 나오고 어떨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크고 작은 행복을 채워 충만한 맘으로 잠에 들었다.


그중에도 가장 충만했던 주말을 기록하고 싶다.


토요일

토요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영장에 출근했다.

5시간을 강의하고 나니 물에 잔뜩 젖은 솜이불마냥 몸이 쳐지고 무거웠다.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코엑스로 향했다.

토요일 코엑스에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알아 벌써 피곤하고 가는 길 내내 한숨이 나왔다. 심지어 나도 몰래 '가기 싫다'는 혼잣말까지 속삭였다.


그렇지만 도착해서 친구들을 만나자마자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이야기가 오갔다.

분명 몸은 피곤했지만 맘이 편안했다.


나는 분명 흠이 있고 여러모로 별로인 사람이지만, 이 친구들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상한 모습을 보여도 그것 때문에 우리 사이가 크게 틀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나의 엉망진창 버전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 아직도 나와 만나준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그리고 이 친구들이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어떨 때는 투명하리마치 드러나는 친구들의 응원과 지지. 이런 게 우정이구나- 하고 가끔 뭉클할 때가 있다.



일요일

일요일은 또 다른 친구들을 집에 부르는 날이었다. 누군가를 초대할 만큼 멋진 집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오르막에 네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좁은 집이지만 이 친구들을 꼭 초대하고 싶었다. 이 집에 살게 된 것이 내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완벽한 나의 강아지 꾸꾸도 보여주고 싶었다.


요리를 해주겠다며 사부작사부작 열심히 무언가를 했지만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멋진 요리라고, 대접받은 기분이라고 좋아하며 사진을 찍었고 먹는 내내 고마워했다.

친구들이 사 온 케이크 한 판과 두 조각 그리고 사과와 크림치즈를 다 먹어버렸다.

나의 요리
친구들이 사온 디저트


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감탄했다.

이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내 친구라니! 세상에 이렇게 현명하고 선한 사람들이 있다니!


빈틈없는 대화 속에 재미와 의미가 모두 있고 위로와 공감도 있었다.

하나하나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자꾸만 생각하게 될 만큼 소중한 대화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로의 인생사나 진로처럼 중요한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상의 감각을 나누는 것이 사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나눔에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을 가능성은 너무나 적다는 걸 알기 때문에 소중했다.



내가 선택한 친구들

주말 동안 만난 네 명의 친구들을 내 영원한 친구로 선택하기로 다짐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은, 언젠간 멀어지더라도 내 마음속에는 계속 좋은 친구로 남겨둘 작정이란 말이다.

어쩌다 친해진, 그러니까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살 부비다보니 가까워진 친구들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나의 온전한 선택으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사회적 여과망에 의해 걸러진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될 뿐이었다. 가까운 지역, 같은 학교, 같은 나이, 같은 학급에 있는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 회사, 나이, 거주지역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모든 게 같아도 내가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내 선택으로 친구를 사귀는데 이게 어떤 면에서는 두렵지만, 이전의 것보다 더 안정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그리고 더없이 소중하다.


내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친구들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성공한,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만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한줄 정리: 그러니까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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