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일보다, 엄마를 돕는 게 더 중요해
제사에 대하여
모름지기 페미니스트에게 제사란 가부장제의 상징이자 결정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는 여성에게도 제사는 지긋지긋한 것이다. 제사가 부부 또는 고부 갈등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나에게도 제사는 힘든 것이었다.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든 것이 아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엄마를 보는 게,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제사상을 차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엄마도, 제사음식은 신성하게 취급하면서도 엄마의 노동은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남자 어른들의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취를 하고 나서는 제삿날에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 힘이 죽 빠졌다. 내가 하는 이 공부가, 여성운동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제삿날만 되면 반차를 썼다. 반나절 내내 음식을 만들었다. 남자 어른들은 정장을 입고 절을 할 때 엄마는 앞치마를 입고 뒤에서 제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제사 후에 남자 어른들이 밥을 먹을 때도 엄마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남자 어른들이 다 먹고 자리가 날 때, 엄마는 이미 배가 다 갈라지고 살이 다 부서진 조기에 밥을 먹었다.
제사도, 엄마도, 남자도 싫어
교복을 입을 쯤부터 나는 제사가 끝난 후에 아무것도 모른 채 남자 어른들과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밥을 못 먹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내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과일을 가져와서 담아두는 것, 음식을 만드느라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것, 남자 어른들의 밥상에 수저를 놓고 물을 떠다 주는 것 등 내게 잔심부름을 시켰다.
어떤 게 짜증나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밥을 못 먹는 게 짜증나는 것인지, 심부름을 하는 것이 싫은 건지, 하루종일 부엌에 서있는 엄마가 싫은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정말로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제사가 너무 싫었다. 한 번은 남자 어른들한테 화를 냈다. 왜 엄마만 음식을 만들고 날라야 하느냐고. 고모부가 대답했다. 남자들은 다 일하고 오는데 힘들지 않느냐고. 나는 우리집에 일 안 하는 여자가 누가 있느냐고 물었다. 고모부의 언성이 높아졌고 나는 지지 않았다.
"그냥 가만있어. 내가 할게" 엄마가 고모부와 나의 싸움을 말렸다.
그게 아닌데. 내가 심부름하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닌데. 내 맘을 몰라주는 엄마가 미웠고 옆에서 가만히 먹고만 있는 친척오빠도 싫었다. 그때부터 제사에 안 가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들 때마다 어차피 나는 절도 못 하는데 뭐 하러 가느냐고 속으로 나 스스로를 타박했다.
엄마에 대하여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여성들의 숨겨진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억압받는 것처럼만 보였던 여성들이 사실은 그 속에서 어떤 주체적인 일들을 해왔는지, 가부장제의 부역자 같기만 했던 여성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그 많은 일들을 왜 했을까?
다시 제사에 가기 시작했다. 작은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지셔서 제사에 안 온다는 말을 듣고서, 더 이상 내 죄책감을 이길 수가 없었다. 엄마 혼자 음식을 하느라 고생할 걸 뻔히 알면서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엄마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가부장제의 순응자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에 더욱더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청년여성들과 '엄마'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나타난 변화 중에 하나는 문학이 변했다는 것이다. 여성작가들이 많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여성서사가 변모했다. 그중에 하나는 모계 가족 서사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족은 부계혈통으로 구성되고 이어지는 것이다. 문학의 가족 서사도 이전에는 '아버지'가 그 소설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처음 대중화되었던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여성문학은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거나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주된 플롯이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나오는 모계 가족 서사는 할머니와 엄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세대를 잇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엄마와의 화해를 그리기도 한다. 모계 가족 서사로 대표되는 작품은 이금이의 [하와이 나의 엄마들], 최은영의 [밝은 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인데 이 세 작품은 모두 한국의 근현대사를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가족 서사의 변주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페미니즘 리부트가 만든 변화가 무엇인지 핍진하게 보여준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청년 여성들은 질문을 바꿨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여성들은 "엄마는 왜 목소리가 없었을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아니, "누가 그 목소리를 지웠는가"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한 것도 이 질문들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니 돕고 싶어졌다. 외롭게 혼자 음식을 차리게 두고 싶지 않았다.
황정미(2007)는 여성의 사회권이 아내, 어머니, 노동자라는 지위에서 인정되고 있음을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자로서 주어지는 권리자격은 너무 불안정하고 아내, 어머니 그러니까 보호와 돌봄을 권리자격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황정미. (2007). 여성 사회권의 담론적 구성과 아내ㆍ어머니ㆍ노동자 지위. 페미니즘 연구, 7(1), 13-54.
엄마는 이 논문을 읽은 적 없겠지만 경험적으로 알았다. 아내가 되어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엄마의 엄마를 보고, 할머니도 당신의 엄마를 보고 알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제사는 성원권을 얻고 행사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결코 제주(祭主)가 될 수 없음에도 제사상을 차리는 엄마를 이제는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것보다도 엄마를 돕는 게, 엄마를 외롭지 않게 하는 게 내게 더 중요하다. 이렇게 결국 나도 제사상을 차리게 됐다. 어쩌면 10대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나를 미워할지 모르겠다.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