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처럼 공부하면 좋잖아요

by 정숙진

"제수씨도 남편처럼 공부하면 좋잖아요."


한인 모임에서 만난 A가 한 말이다.


이런 자리에서 만나는 남성은 대부분 이름 대신 제수씨 혹은 형수님으로 나를 부른다. 누나라고 부르며 귀엽게 다가오는 남성도 간혹 있지만.


가족 중 남편 혼자 공부하는 것도 버거운 판에 부부 둘 다 학생 신분으로 지내는 건 상상도 못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벌고 경력 쌓는 일에 집중한다고 대꾸했더니, 역시나 A는 지지 않고 한마디 더했다.



"그래도 남편 혼자만 공부하는 것보다 같이 하면 더 좋잖아요."


부부가 동시에 공부하면 누가 생활비를 보태주기라도 하나?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포기하고 공부만 하라는 소린가?


나는 번역일을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런 말이 A 같은 사람에게 먹힐지는 의문이지만.


고국에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다가도 해외에 나와서 청소 등 고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가 있다. 이들처럼 해외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나는 전공이라도 살리지 않았냐, 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A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남편만 공부시키면 뭐 하냐, 너도 공부해서 자기계발하라는 말을 에둘러서 쏟아냈다.


부부가 서로의 지적 수준을 맞춰 갈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너도 나도 박사학위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외국에서 열리는 한인 모임은 고국 사람과의 반가운 교류의 장이요, 그리운 고향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기회다. 하지만, 명절 때 친척 어른에게서 들을 만한 잔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라면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을 고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의 친구라는 이유로 인사했을 뿐인데 말이다.


낯선 땅에서 만난 고국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것까진 좋은데 이를 벗어나 아예 친척처럼 행세하려는 이가 있다. 나와 동년배 친척이 아닌 어른뻘로 말이다. 그럴 때면 친척에게서 들어도 부담스러운 소리를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서 들어야 한다.


해외에 살면, 명절 잔소리 중에서도 메뉴가 하나 더 추가된다.



"남편처럼 공부하면 좋잖아요."


성별이 뒤바뀐 잔소리도 아마 있으리라.


누군가 좋은 의도에서 하는 말을 '잔소리'라는 거북한 단어로 표현해서 죄송스럽긴 하다.


누구든, 상대에게 이롭다 싶은 말로 조언할 수는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상대가 조언을 받아들일 입장이 아니라고 고백하면, 그 선에서 멈추면 안 될까? 그런 고백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 있다. 돈이 없어서 혹은 능력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적정한 선에서 멈추지 않으니 조언이 잔소리로 변질된다. 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잔소리 범위는 그렇다.



해외로 유학 갈 정도면 부부 둘 다 경제 활동을 중단해도 될 정도로 부자일까?


누가 어느 곳에 살든 경제력은 집마다 다르다. 힘겹게 맞벌이를 하는 데도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힘든 가족이 있는가 하면, 외벌이에도 부모나 형제, 자매, 처가까지 넉넉히 부양하는 가족도 있다. 변변한 직업 없이도 물려받은 유산 덕택에 풍족하게 사는 이도 있다.


국내외 어디서든 결혼한 부부가 동시에 공부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나? 해외에서 공부한다고 모두가 재벌집 아들 딸은 아니다.


경제 위기로 학비 공급이 끊기거나 본인 또는 가족, 부모의 건강 악화로 학업을 중단하는 이도 있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 유학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학업을 이어나갈 실력이 도저히 안 되어 중도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 비하면, 내 남편은 무사히 학업을 마쳤으니 형편이 낫다고 할 수는 있지만,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이보다 형편이 낫다 뿐이지 부부 둘 다 경제 활동을 제쳐두고 공부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국에 있을 때도 힘겨운 일을 비싼 물가와 학비, 체류비 등 외국인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주어지는 해외에서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빠듯한 형편임에도, 제2의 인생에 도전하기 위해 혹은 더 늦기 전에 못다 한 배움의 길을 가기 위해 공부를 선택하는 이가 있다. 내가 본 해외 유학파 모두가 그렇다 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런 부류가 있다.


반면, 한국의 입시 제도에 적응하지 못해 해외로 도피 유학을 가는 사람도 있다.


또한, 졸업과 결혼, 해외 유학을 거의 동시에 선택하는 이도 있다. 부부 둘 다 학업을 마칠 때까지 학비와 해외 체류비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조건이요 출산을 미루더라도 여유 있는 나이였다.


이에 반해, 늦은 나이까지 어렵게 공부하다가 학위를 따고 그즈음 인연을 만나 결혼하지만, 2세를 가질 시기를 놓쳐버려 안타까워하는 이도 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든 또 어떤 도움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든 해외 유학은 단순히 돈이 많아서 선택하는 길이라 할 수 없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게는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긴다. 고국에서라면 부모나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낯선 나라에서 타인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심리적 부담마저 더해진다.



"다들 내가 박사 과정 밟는 줄 알아."


석사 과정에 있지만, 박사 과정을 밟는다고 오해를 받는 B의 말이다.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남편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지만,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다 보니 학업이 더디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1년이면 끝날 석사 과정이 몇 년씩 이어지고 있으니 주변에서는 자연스레 박사 과정으로 인식한 것이다.


해외에서 형성된 한인 사회의 구성원은 다른 외국인 사회와 마찬가지로 2~3년이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기 마련이다. 어학연수나 석사, 박사 과정을 위해 영국에 왔다가 학업이 끝나면 귀국하고, 해외 주재원으로 왔던 사람도 정해진 근무 시기가 끝나면 본사로 복귀한다.


이렇게 구성원이 몇 년에 한 번씩 교체되니 '지난번에 석사 공부한다고 한 것 같은데?'라며 주변 사람의 학업에 대해 자세히 따져 물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셈이다.


부부가 동시에 공부에 몰두해도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육아 때문에 학업이 뒤처지는 B를 보니 마냥 부럽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각자의 빠듯한 사정이 있음에도 '남편처럼 공부하면 좋잖아요' 소리만 거듭하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숨통이 막힌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Álvaro CvG on Unsplas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