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관계를 가꾸는 일에 대하여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별되고 정제된 소수만 남는 과정이라고.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곁에 두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를 떠나보내야 하는지 아는 용기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김종원 작가의 『어른의 관계를 가꾸는 100일 필사 노트』를 따라 필사를 이어오며 나는 그 문장들 사이사이에 숨겨진 정직하고 냉철한 조언을 수없이 마주했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다는 것의 성숙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고 누군가의 관심 속에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기대가 타인을 향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쉽게 무너지고 실망한다.
작가는 조용히 말한다.
타인에게 열 가지를 기대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한 가지를 기대하라.
어른의 관계는 의존이 아니라 성숙한 독립성 위에 놓인다. 설령 스스로 향한 기대가 번번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안에 경험과 내공으로 쌓인다. 타인에게 돌려진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지만 나를 향한 기대는 결국 나를 단단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정말 강한 사람은 혼자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다지는 고요한 연습의 장으로 삼는다.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은 바로 그곳에서 온다.
나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의 가치
우리는 종종 불필요한 설명들로 하루를 낭비한다.
나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포장하고 내어놓느라 지친다. 하지만 돌아보면 긴 설명 없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 한 사람만 있다면 관계로 인해 낭비되는 마음의 소모는 줄어들고 삶은 한결 더 아름답고 간결해진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조용히 내 삶을 응원한다.
질투나 시기 없이 순수하게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실패의 순간마저 동행해 준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은 고요히 빛난다.
흐름에 맡기는 지혜
우리는 관계가 멀어질 때 두려움을 느낀다. 괜히 붙잡고 싶은 마음, 억지로 이어보려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인연은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붙잡을수록 탁해지고 놓아줄수록 마음은 깔끔해진다.
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고 흐름에 맞춰 떠날 이들을 보내야 할 때가 있다. 감정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지혜란 굳이 해명하지 않는 품위 억지로 애쓰지 않는 절제 속에 있다. 이 여유로운 태도는 결국 좋은 인연을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품위는 삶의 균형에서 탄생한다
품위는 화려함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아니다.
품위는 예의를 지키되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평온함이다. 예의를 지키는 이유는 남을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이다.
삶의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공손함과 단호함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활발한 외침보다 정제된 침묵에서 더 많은 진실을 발견한다.
다정함의 언어
다정함은 단순한 온화함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삶과 언어를 이해하고 그의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는 지적 섬세함에서 비롯된다. 정교한 언어 감각은 필사를 통해 길러지고 타인의 문장을 내 안에 채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넓은 이해를 배우게 된다.
다정한 사람은 말이 적더라도 그 말이 단단하고 온기 있게 상대의 마음에 닿는다.
행복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성숙
내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기뻐해 줄 사람은 의외로 적다. 행복은 깊은 감정일수록 조용한 곳에서 자라난다.
성숙한 어른은 자신의 행복을 자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행복을 욕망하는 손길들이 나타나기 전에 조용히 마음속에 꽃을 피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묵묵히 존재하며 스스로 미소를 짓는다.
소문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
소문은 신경 쓸 가치가 없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 그 말을 전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문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소문은 때때로 내가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침묵은 종종 가장 단단한 방패가 된다.
인생의 후반전은 태도로 빛난다
젊음의 빛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흐려진다.
그러나 태도와 내면의 깊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해진다.
볼수록 은은하게 반짝이는 사람, 주름 속에 지혜를
숨긴 사람,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사람.
그런 삶은 후반전에서 오히려 더 아름답다.
내면의 빛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부드러우나 단단한 사람
늘 웃고 온화해 보이지만 경계를 지킬 줄 아는 사람.
쉽게 흔들리지 않고, 무례에 반응하지 않으며 혼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 그는 본심을 분명히 표현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관계 속 상처에도 끝내 자기 자신을 믿을 줄 아는 사람.
부드러움과 단단함은 공존할 수 있다. 그 양면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어른으로 완성된다.
건강한 관계는 적당한 거리에서 피어난다
거리는 냉담함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숨 고르기이다.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만 각자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기고 오해는 해소되며 마음은 편안해진다.
밀착된 관계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정 거리는 관계의 온도를 적절히 유지하는 기술이다.
100일의 필사, 그리고 그 이후
100일 동안 타인의 문장을 손끝으로 옮기며 나는 깨달았다. 관계란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예술이다.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며 그 평화 위에 좋은 사람이 머문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있다.
때로는 흐름에 맡기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단단한 내면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 배움 속에서 언젠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내 인생의 빛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조용히, 오래도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