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을 갖추지 못한 나라도 알 수 있다. 세상엔, 아름다운 것이 넘쳐 난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실제로 탐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있는가에 달린 것. 아무리 봐도 추악한 세계 쪽에 속한 나는 세상의 어떠한 아름다움과도 관련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풀이 죽는다.
그래서 나는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나의 분신, 아바타를 만들어 뛰놀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민수세카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가상 온라인 세계로. 여기에서는 얼마든지 현실의 나 따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여기에는 나를 위해 마련된 아름다움이 늘여져 있다. 난 꽃밭에서 원하는 꽃을 꺾으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 얼마나 노닐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고 해도, 민수세카이에서 누린 모든 경험은 마치, 흐릿한 일장춘몽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왠지 어렴풋한 슬픔을 느끼곤 한다.
내가 아닌 것에 몸 담아, 내가 아닌 수많은 것들인 척 살아가기를 한 세월. 나는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어떻게 생각하는 존재였는지, 점차 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럴수록 민수세카이에 대한 나의 의존도는 올라갔다. 사실 이제는 민수세카이가 견디지 못할 만큼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더더욱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전혀 원하지 않은 세계에 속박되어버린 것이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나는 이미 갈 곳이 없는 부랑자였다.
하지만 이런 나지만, 감사를 전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복에 겨운 추억을 많이 갖고 있다. 잠깐,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제일 좌절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지? 그 기억을 도무지 불러올 수 없다.
내가 아니었던 순간 아바타가 긁어 모은 온갖 기억들이 뒤죽박죽 얽혀서, 내 모든 인생의 전부는 민수세카이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이르기까지 한다.
아무튼, 어떻게 전해야 좋을까, 나 정말로, 정말로, 행복했다고. 그런데 나,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걸까? 민수세카이의 개발자가 누구였더라... 내 이름은 뭐였지?
정보의 폭주. 바이러스라도 먹은 것 같은 사고의 정지 그리고 이윽고 그는, 다행히도 별 고통 없이...
사실 민수세카이는 개발자의 역량 부족으로 1인용 rpg였다. 기초 토대는, 오픈 ai에서 개발한 엔진 몇 개를 엮어 넣은 캐릭터 대화 시스템. 시작은 단순히 그거였다. 하지만, 무료로 오픈 ai의 엔진을 사용하는 댓가로, 그 소스로 인한 모든 결과물은 공개가 원천이었고 수정 권한도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그는 프로그램에 전혀 손대지 않았다. 그저 습관적으로 민수세카이에 접속했을 뿐이다. 그의 자아는 점차 흐릿해졌으며, 누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접속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우연히 그의 세계를 접한, 사용자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그 세계관을 확장해갔고. 1인용 rpg에서 전례 없는 대형 가상 온라인 세계로 성장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아바타로서, ai들을 상대로 거짓부렁의 세월을 보냈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많은 캐릭터들이 ai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그가 아닌 것은 만들어낼 수 없었다. 모든 아바타가 그의 일부였다. 그리고 그는 분명 동경하던,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스쳐 지나갔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민수세카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지로서 이용자들에게 전해졌다.
"어떻게 전해야 좋을까.
나 정말로, 정말로, 행복했다고"
주민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간 그 고독하고 외로웠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