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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 Jun 07. 2024

작고 사소한 것들의 기쁨

이제껏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더라도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을 누리거나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싼 명품 가방이나 명품 화장품보다는 가볍고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선호해 왔고, 해외여행을 통해 낯선 이국의 풍경과 음식들을 맛보는 것도 당연히 좋아하지만, 집 근처를 산책하거나 삼십 분 정도 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 드라이브를 하는 일이 내게 힐링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것은 어쩌면 풍족하게 살아오지 못한 유년시절이 반영된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전히 해외여행과 명품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기엔 턱없이 부족한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하지만 오랜 시간 키우던 화분에서 피어난 꽃에 기뻐하고 새로 돋아난 잎을 귀여워하는 일이나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훌륭한 커피를 만나는 일, 길을 걷다가 애교쟁이 고양이를 만나는 일 같은 것들이 명품 가방보다, 근사한 해외여행보다 내게 더 자주 일어나고 또 그만큼 자잘한 행복을 자주 가져다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소소한 걸 좋아하기 시작하면 평생을 소소하게만 산다’며 더 큰 것을 쫓아가는 삶을 살라고 얘기한다. 물론 나에게도 꿈은 있다. 그리고 그 꿈은 분명히 지금의 삶보다 근사하고 거창한 방향으로 향해 있고,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노력 중이다. 다만, 근사하고 거창한 것을 쟁취하기 위해 오늘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잘한 기쁨들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할지라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나의 이런 생각은 엄마의 영향이 없지 않다.

엄마는 예전부터 가족들끼리 여행을 갈 때면 운전을 하는 아빠에게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가자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는 길거리의 꽃과 나무와 산, 강을 보며 가고 싶어 했고, 또 천천히 도심을 통과하며 사람구경을 하면서 여정을 하고 싶어 했는데, 그와는 반대로 성격이 급한 편인 아빠는 국도로 가면 예상한 시간보다 한참을 늦게 도착한다며 어김없이 고속도로로 핸들을 돌리곤 했다. 그랬던 아빠도 엄마와 사십 년을 가까이 살다 보니 요즘 들어서는 봄에 나무에 돋아나는 새잎을 보기 위해 고개를 한껏 뒤로 꺾고 넋을 잃은 듯 한참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기도 하고, 나를 붙잡고 새잎들로 연둣빛이 된 나무가 너무 신기하고 귀엽지 않으냐며 한참을 말한다. 저런 모습이 예쁘고 소중하다는 것을 육십 대가 되어서나 알았다고. 가끔은 엄마보다 더 일상의 작은 것들에 진심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서 요즘은 엄마만큼이나 아빠가 귀엽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이 작고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본가 마당에 있는 엄마의 작은 텃밭을 보며 ‘내년에도 여기에 이것들을 심을 수 있으려나 몰라’라고 무심코 말하는 엄마에게 ‘걱정 마. 엄마는 나보다 오래 살 거니까.’라고 장난처럼 말하지만, 혹시나 정말로 그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 두려움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온다.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그 사소한 다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매 순간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물론 나의 엄마는 아주 야무지게 병과 싸워주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엄마와 근사한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보다 한 발자국 더 먼 미래엔 엄마와 이국의 거리를 걸으며 낯선 나라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가 오기 전까진 가까운 집 근처 호숫가를 산책하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통시장을 구경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초록식물과 꽃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작고 사소하지만 끊임없이 주변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둘 생각이다.


내가 쓰는 글도, 내가 판매하는 상품도 모두 그런 작고 사소한 것들이 주는 기쁨을 담고 있다. 그만큼 가격도 작고 소중해서 큰 이윤을 남기지는 못하지만, 내 상품을 구매하고 잠깐이나마 기뻐할 누군가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내가 거창하고 근사한 사람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 시작과 밑거름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것들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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