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가 곱슬인 편이라 비가 오면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것도 싫고, 습도로 인한 끈적임도 싫다. 보부상 타입이라 외출할 때 이것저것 챙겨나가는 게 많은데 우산까지 보태야 되는 것도, 신발이 젖어 축축해지는 것도 비 오는 날이 싫은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비는 어쩌면 나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손꼽아 기다려온 날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니 말이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 날씨가 꾸물거리면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친구들의 눈초리는 하나둘씩 내게로 향한다. ‘역시 먹구름이 너를 따라왔구나’ 하는 눈빛이다. 내가 가는 모든 여행에 100% 비가 따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자주 여행지에서 비를 만났다. 유독 특정 친구와 가는 여행에선 틀림없이 비가 따라오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와는 어디 갈 때마다 심한 폭우가 휘몰아치기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자칭 ‘날씨요정’이라 불리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함께일 때는 아무래도 내가 가진 ‘비를 부르는 여자’ 타이틀이 제 힘을 못쓰는 것 같다. 날씨요정과 함께하는 나들이에서는 비를 만난 적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분명히 전날까지는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이 내가 여행 가는 날 아침이면 새카맣게 먹구름이 끼어있고, 일기예보를 보면 일주일 내내 해님이 그려져 있지만 딱 내가 쉬는 그 하루만 비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 상황을 보고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는 우스갯소리로 ‘굿이라도 해보라’고 할 정도였다.
대학시절 여름방학 때 동그라미와 내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도 없었고, 일주일씩이나 집을 떠나 여행객으로 살아본 적도 없었다. 최소한으로 꾸린 짐을 챙겨 자취방을 나설 때의 기분은 설렘 그 자체였다. 내가 아무리 비를 부른다고는 하지만 설마 여행하는 일주일 내내 비만오진 않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일주일 내내 비가 온 것은 아니었지만 여태껏 살면서 여행지에서 만난 비 중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비를 그때 만났다.
첫 내일로 여행에서 동그라미와 나는 주로 남도 쪽을 다녔는데, 기억에 남을만한 비가 내렸던 날은 ‘순천’을 갔던 때였다. 우리는 근처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고 ‘낙안읍성’을 가기로 했다. 소란스러운 찜질방에서 선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은 꼭 저녁처럼 하늘이 어두웠다. 사실 전날부터 하늘이 심상치는 않아 보였는데, 여행 전 미리 구매해 뒀던 비옷이 배낭 안에 들어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하고, 드디어 비옷을 입려 보려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설레기도 했다.
비는 낙안읍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그사이에 비는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비옷을 챙겨 입고 관광을 시작했지만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에 제대로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날씨가 그러니 관광객들도 별로 없었고, 챙겨 입은 비옷이 무색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젖어들어갔다. 점점 무거워지는 옷가지와 한발 내딛을 때마다 절컥절컥하며 물이 나오는 운동화,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까지.. 폭우의 무게에 지쳐갈 무렵 낙안읍성 안에 있는 음식점 하나가 문을 연 것이 보였다. 낙안읍성의 느낌과 비슷하게 약간 주막 같은 외관을 하고 칼국수나 수제비 같은 토속적인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식사가 되느냐 물었더니 대청마루로 안내를 해주셨다. 끈적이는 습도에 에어컨 바람이 절실했지만, 일단 물에 젖은 신발이라도 얼른 벗어던지고 싶어 안내해 주시는 데로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뒤로 하고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마루 끄트머리에 잘 널어두었다. 동그라미와 나는 칼국수를 한 그릇씩 주문했다. 습하고 더워 뜨거운 칼국수와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잇속까지 시린 냉면 같은 걸 먹고 싶었지만, 그런 시원한 메뉴는 없었고, 아침부터 빗속을 걷느라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에 뭐라고 입으로 넣고 싶었다. 사방이 뚫려있다시피 한 마루에 앉아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잠시 숨을 고르니 습하지만 꽤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통과해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서로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를 보며 다음 일정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살짝 걱정을 하려는 찰나에 주문한 칼국수가 나왔다. 반찬으로는 전라도 특유의 짙은색의 김치가 단출하게 접시에 담겨 나왔고, 그때부터 우리 사이를 지나가는 소리는 땅을 때리는 빗소리와 후룩후룩 면발을 흡입하는 소리뿐이었던 것 같다.
끈적한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면 조금뒤에 대청마루를 휘감아 지나가는 물기 가득한 바람이 살짝 식혀주었고, 뜨거운 칼국수에 얹어 먹는 젓갈향 짙은 전라도 김치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그릇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핸드폰으로 틀어놓은 것 같은 거친 음질이 빗소리와 섞여 들렸다. 어쩐지 멜로디와 가사가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정신없던 식사를 마치고 나자 그제야 무슨 노래인지 또렷이 들렸다. 토이의 ‘좋은 사람’이라는 곡이었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음악을 틀어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른 배를 두드리며 대청마루에 누워 듣던 노래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날 식당을 나설 때까지 당연하게도 신발과 양말은 마르지 않았지만, 엉망진창이 된 서로의 몰골을 보며 깔깔 웃던 그 시간이 ‘네가 있어서 나도 좋았고, 네가 웃어서 나도 좋은’ 시간으로 남았다.
동그라미와 나는 거의 십 년도 더 지난 그때의 기억들을 아직도 가끔 꺼내놓곤 한다. 비를 그렇게 맞고 엉망이 되었어도 진짜 재밌었다고. 그때 먹은 칼국수가 인생 통틀어 가장 맛있는 칼국수였다고. 꽤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세세한 부분들은 동그라미와 나의 기억이 조금 다르다. 그때 빗속 대청마루에서 먹던 음식을 나는 칼국수라고 기억하는 반면, 동그라미는 수제비라고 기억하는 것처럼. 칼국수나 수제비나 아무렴 어떤가 싶기도 하다. 그 시간 우리가 빗속을 헤매다 만난 음식이 맛있었고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니 그거면 됐다 싶다.
난 지금도 비 오는 날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여행 가는 날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도 정말 싫다. 하지만 비를 부르는 여자로서 이만큼 살아오며 느낀 건 모든 여행지에서의 비가 나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비가 와서 더 기억에 선명히 새겨지기도 하고, 비가 왔기 때문에 빗속을 함께했던 사람이 더 소중해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요즘엔 중요한 날 비가 내리면 ‘망했다’라고 생각하기보단 ‘또 얼마나 기억에 남게 하려고 비가 오나’라며 바꿔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앞으로 남은 내 앞의 생에서 비가 좋아질 날이 올진 미지수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행복한 날들 중 하루쯤은 비가 와도 좋겠다 싶은 날이 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