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얼 Jan 14. 2023

다회(茶會)

새로운 미식의 세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얼마 전에 지인의 추천으로 다회(茶會; 차를 마시며 노는 모임)를 생에 처음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차 중에서도 고급에 속한다는 오룡차와 무이암차, 보이생차/숙차 등 5가지 종류의 차(茶)를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에 맛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회(茶會)의 방식은 간단했습니다. 마련된 장소에 가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손님들은 모임을 주관하는 호스트인 팽주(烹主)를 마주 보고 앉습니다. 그럼, 그 팽주가 여러 종류의 차(茶)를 소개하고 그 차에 대해서 설명을 하며 천천히 차를 추출합니다. 그리고 추출된 차를 마주 앉은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지요.


팽주(烹主)는 차(茶)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상 속의 소소한 이야기 등의 담소를 나누며 분위기를 이끌어갔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매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나중에 검색해 보니, 그 팽주에 따라서 다회(茶會)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많이 좌우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차를 추출하더라도 그 차를 다루는 팽주마다 맛이나 향이 달라지며 심지어 팽주는 다회에 참석한 사람의 건강상태나 컨디션까지 고려하여 그날의 차를 선택한다고도 합니다.


참 섬세하고 친절한 모임이죠. 역시나 저는 그 자리에서도 커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茶)와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비슷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매우 달랐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커피는 한 번 추출하고 나면 그 찌꺼기는 그대로 버립니다. 계량된 원두를 분쇄해서 한 번 추출하고 나면 절대 재사용하지 않죠. 이미 그 커피에서 추출할 수 있는 향과 맛 성분은 웬만큼 다 빠져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茶)는 단순히 한 번 우리고 나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건조되어 있는 찻잎을 씻어낸 물은 버린 다음, 한 번 우려서 맛을 봅니다. 그러고 나서 한 번 더, 또다시 한번 더. 거의 10회 이상을 우려서 마셨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차를 여러 번 우리면 우릴수록 맛이 연해지거나 떫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향과 맛이 드러났죠.


그리고 차(茶)의 종류에 따라 마실 때 사용하는 잔이 달랐습니다. 어떤 차는 입구가 좁고 깊은 잔을 사용해서 마셨는데, 차를 마시고 난 다음 잔에 남아있는 향을 맡아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편안한 잔향이 깊은 잔 안에 오래 남아있었죠. 반면, 어떤 차는 입구가 넓고 짧은 잔을 사용해서 마셨는데, 그 차는 질감과 단맛이 좋았습니다.


커피도 그런 방식을 사용하곤 합니다. 그 예로, 전에 대전에 놀러 갔을 때 방문했던 카페에서는 한 가지 커피를 세 종류의 잔에 마셔보도록 권했습니다. 똑같은 커피였지만 생김새가 다른 잔에 따라놓고 마실 때마다 그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졌죠. 재미있지 않나요?


(c)만얼 | 대전에서 방문했던 커피 바(Coffee Bar)


마지막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팽주(烹主)의 존재였습니다. 물론 다회(茶會) 특성상 팽주가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카페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리스타에 의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도 하죠. 팽주나 바리스타처럼 그 공간을 운영하는 호스트가 진중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공간에 방문한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성격으로 행동합니다. 반면, 호스트가 너무나 가벼운 사람이면 손님들도 똑같이 행동하죠.


이번에 경험했던 다회(茶會)처럼, 꽤 오래전에 커피토크(Coffee Talk) 라는 모임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커피 애호가들끼리 모여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맛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죠. 모임의 성격은 매우 비슷하지만, 참석한 사람들의 건강이나 컨디션까지 생각해서 차의 종류를 선택하는 다회(茶會)와 팽주(烹主)의 섬세함이 훨씬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커피와 건강의 상관관계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여러분들도 커피를 좋아하신다면, 커피 모임뿐만 아니라 다회와 같은 차 모임도 한 번쯤은 용기 내서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마신다'는 행위가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단순히 짧은 시간에 한 잔을 소비하는 것과 긴 시간 동안 수십 잔을 함께 즐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 지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