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따라 세계일주] 시리즈를 연재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주로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방문했던 카페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코로나 이후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국내에 있는 카페도 많이 다녀보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가끔씩은 돌아다니긴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선뜻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사진을 종종 찍어두긴 했지만 이번에 잠깐 휴가 삼아서 서울을 다녀오며 다시 한번 글을 써보고자 마음먹게 되었고, 그 처음을 이 카페와 함께 시작하려 합니다. 오랜만에 올려드리는 [커피따라 세계일주]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일상 속에 가볍게 쉬는 시간을 함께하며, 이 글이 여러분들께 작은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리 오늘도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만얼은 스몰토크와 환대 좋아하니까 요즘 핫한 도덕과 규범 가봐도 좋을 듯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앞두고 저를 잘 아는 작가님 한 분께 카페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위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추천받은 도덕과 규범. 오늘 소개해드릴 카페입니다.
[커피따라 세계일주] 시리즈나 [커피에 진심이 사람들, 바리스타] 글을 몇 편 읽어보셨던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단순히 맛있는 커피 한 잔 보다도 사람과의 기억과 소통을 더 좋아라 하는 편입니다. 사실 맛있는 커피 한 잔은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맞은편에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한 잔에 대한 기억은 다르게 적힙니다.
<영업시간> - 월 ~ 금 11:00 - 19:00 - 토 ~ 일 12:00 - 20:00
2024년 8월 3일 토요일.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습니다. 에어비엔비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릴 정도였으며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덥던지요. 상수역 근처에 위치한 도덕과 규범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2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주말 오픈시간인 12시에 맞춰서 지인과 만나기 위해 일찍 출발했고 다행히 오픈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12시 전에 도착하니, 한창 오픈 준비 중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가가는데 본능적으로 눈치를 보며 쭈뼜쭈뼜 다가갔습니다. 최근에 방문했던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오픈시간 전부터 도착해 있으면 꽤 미안하면서도 불편한 눈치로 '오픈이 OO시이니, 그 이후에 들어오세요'라는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시간을 맞추려 하는데, 늘 일찍 도착해서 괜히 죄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어떨까 싶은 생각에 준비에 바쁜 사장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c)만얼 | 오픈준비에 한창이셨던
"안녕하세요, 혹시 오픈하신 걸까요?"
"아아! 안녕하세요! 저희가 아직 오픈 전이긴 한데 잠시 들어와서 기다리시면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와아 감사합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천천히 준비해 주세요. 어차피 지인이 오기로 해서요!"
생각지도 못한 환대와 밝은 반응에 놀라면서도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밝은 얼굴로 맞이해 주시며, 아직 바쁘게 오픈 준비 중인데도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말씀해 주시는 배려가 참 감사했습니다.
"오픈 전부터 이렇게 일찍 와서 죄송해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버렸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오픈부터 이렇게 찾아와 주실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아, 그런가요! 사실 포항에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오픈런 성공해서 기분이 좋긴 한데요 하하"
"포항이요??"
저는 보통 카페에 방문하면 커피를 만족하면서 한 잔 마실 때까지 먼저 말을 건네거나 제 이야기를 하진 않습니다. 괜히 부담주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성격 자체가 조용하다 보니 선뜻 말을 건네기가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오히려 해외에 가면 '언제 또 보겠어'하는 마음으로 먼저 말을 건네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쉽지 않더군요.
그러나 이 카페의 사장님은 제가 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넉살 좋은 표정과 말투로 건네주시는 인사 한 마디에 저도 모르게 멀리서 찾아왔다며 어필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엔 혼자 있을 때 거의 표정이 없다시피 할 정도였는데,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부터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장님의 환대, 카페의 분위기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c)만얼 | 카페 내부
아주 좋아!!
(c)만얼 | 아주 좋은 곰돌이
그날따라 어떤 일이 잘 풀리셨던 건지, 사장님은 "아주 좋아!!"라는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덕분에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계속됐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을 기다리는 중에도 웃는 표정으로 사장님에게 한 두 마디씩 건넬 수 있을 정도로요.
예전, 프라하에서 제가 제일 좋아했던 카페라고 소개드렸던 작은 카페, Onesip Coffee (https://brunch.co.kr/@manall/9)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까요? 고즈넉한 골목에 위치했던, 밝고 아늑한 분위기 가득한 카페에서 느꼈던, 그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항상 그 순간의 기억이 다르게 적힙니다.
이날, 도덕과 규범에서도 사장님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와 손님에 대한 환대가 아직까지도 선명할 정도입니다. Onesip Coffee에서 제가 썼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 정도면 커피 따위. 맛없어도 만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이곳에서도 커피의 맛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습니다. 케냐 싱글원두로 추출된 에스프레소와 지인이 마셨던 에티오피아 싱글원두 필터커피, 그리고 브라질 싱글원두를 사용한 배치브루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훌륭한 맛과 품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배치브루(Batch Brew) 임에도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좋았던 브라질 원두를 사용한 커피는 원두를 구매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정말 괜찮은 브라질 원두를 구경하기 어려웠거든요.
(c)만얼 | (좌)케냐 싱글원두를 사용한 에스프레소, (우)판매하고 계셨던 원두와 메뉴판 등
배치 브루(Batch Brew)
'배치 브루(Batch Brew)'라는 용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타벅스에서 파는 '오늘의 커피'를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배치브루는 브루잉 커피의 한 종류인데, 미리 여러 잔 분량의 브루잉 커피를 추출해 놓고 손님의 주문과 동시에 미리 추출해 두었던 커피를 바로 따라주는 것입니다.
미리 추출해 놓은 커피라서 맛이 없는 것 아니냐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배치브루도 어떻게 추출하고 보관하느냐에 따라서 매우 훌륭한 품질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제가 이곳, 도덕과 규범에서 마셨던 배치브루 커피처럼요. 어떻게 추출하고 보관하셨는지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가장 어울리는 추출과 보관 방법을 떠올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배치브루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바쁜 러시타임에도 바리스타는 손님에게 빠르게 커피를 내줄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서 손님들도 부담 없이 즐기기 좋습니다. 물론, 에스프레소를 즐기거나 상대적으로 선명한 캐릭터를 느끼고 싶은 필터 커피를 즐기는 손님에게는 큰 장점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스페셜티 커피를 좋아하지만, 특유의 선명한 캐릭터와 산미가 부담되는 분들에게는 이 배치브루가 부담 없이 즐기기에 딱 좋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비교적 여러 잔을 한 번에 추출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추출시간이 길 수밖에 없고, 물이 넘치지 않게끔 추출시간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커피를 어느 정도 굵게 분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너무 선명한 산미나 캐릭터보다는 커피가 가지고 있는 단맛이나 둥글둥글한 캐릭터들이 더 부각되거든요. 혹시나 커피를 이제 막 즐기기 시작하신 분들은 배치브루로 첫 시작을 해봐도 좋겠네요.
(c)만얼 | 마음에 들었던 카페 구석구석의 요소들과 멋진 디자인의 쿠폰
사장님들의 센스가 넘쳤던 인테리어와 카페를 가득 채우는 좋은 음악과 맛있는 커피가 정말 좋았던,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매력을 배 이상으로 끌어올린 사장님들의 환대가 가득했던 도덕과 규범.
아마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방문할 것 같은, 저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 같은 카페가 될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가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