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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그 Lee Aug 14. 2023

6. 고마워요. 동자님들!

이제야 엄마 아빠와 함께.

"아 얼른 가자고, 공사 시작하기 전에

가서 데려와 야잖아"

아까부터 명도동자가 제자에게 재촉이다.


새벽길을 달려 공동묘지터에 도착했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어 제법 환해졌다.

저기 입구에 정처사 내외도 와 있다.

정처 사는 소녀의 말대로 찾은 유품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다.


"터를 어찌 찾는대요..?"

제자가 묻는다.

공고를 내고 시간을 주었어도

찾아가지 않은 무연고 묘가 많았던 탓에

더 이상 공사를 지연시킬 수 없었던 업체 측이

밀어버리고 시멘트 공사를 하는 중이라

정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알려줄게. 나만 따라와"

앞장서서 휙휙 걸어가며 명도 동자가 말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명도동자가 발걸음을 멈춘다.

"저기 보이지..?

흰나비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말이야"

그 말에 제자가 바라보니 정말 흰나비 한 마리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계속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상을 펴고 준비해 온 세 가지 과일과 포를 놓고

가운데에 향을 피우고 술을 한잔 따른다.

제자가 산신님께 절하며 고한다.

"그동안 오랜 세월 동안 잘 머물다 가신다고 합니다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선산으로 모셔갈 터이니  산신님께서는

허락해 주십시오."


재를 다 마치고 다시 절을 하고는

준비해 간 위패를 꺼낸다

나비가 알려준 곳에 위패를 내려놓고

정 처사가 소중히 품고 온 상자도 내려놓는다.

제자가 향을 피우고 다시 염불을 하며

소녀의 영혼을 부른다.

정처사가

"이제 부모님을 만나러 가자.

그동안 잊고 살아서 정말 미안하구나.

사느라고 바빠서 사람의 도리를 못했으니

차마 무어라 말할 염치가 없구나. 이제라도

스님 덕분에 이렇게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하니

어서 가자꾸나."

정처사 내외가 눈물을 닦으며 상자를 쓰다듬는다.


스님께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한지

30분쯤 지났을까..?

바람이 불어오더니 순간, 향이 휙하니 꺼진다.

향 연기가 위패를 온통 감싸더니

양 옆으로 열어놓았던 위패가 "탁" 닫힌다.

"이제 됐어. 영혼을 위패에 모셨으니

선산으로 가자"

명도 동자가 앞장선다.




" 그래서요..?  선산에 잘 모셨나요..?"

내가 재차 묻는다.

스님께선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나 혼자 열심히만 살면

되는 거 같아도 그게 그렇지가 않은 법이지요.

조상 없는 자손이 없듯이 나 혼자라는 건

없지요. 생과 사, 그리고 이승의 세계와

저승의 세계가 다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날 소녀는 선산에 모셔졌다고 한다.

꿈에도 그리던 엄마, 아버지 곁에

그리고 한 짝의 꽃 신과 예쁜 장신구들과 함께.


소녀의 말을 듣고 집에 달려갔던 정처 사는

아버지께서 소중히 두셨던 유품을 찾고는

그대로 울다 기진맥진 쓰러졌었다고 한다.

부모님께도 동생에게도 자기가 못할 짓을

한 것만 같아서 죄스러운 마음에 그저

눈물밖에 안 나왔다고...

자기 자식 아픈 것에는 온 신경을 썼지만

정작 부모님과 동생의 한스러운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긴 세월을 저렇게 되도록 모른 채

내버려 두고 살아왔으니 그 죄스러운 마음을

어찌해야 용서받겠냐고...


"앞으로 제사 잘 지내주시고

잊지 않고 찾아주시면 됩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정처 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25년이 넘는 세월을

부모님과 나란히 소녀의 위패를 모시고

명절마다 또 백중에도 정성껏 재를 올려주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정처사의 큰 아들은 언제 아팠냐는 듯이

건강해졌다.


"근데 스님, 왜 자손을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거지요..?"

궁금한 내가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신다.

"자손을 해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전하고자 하는 하나의 방법이지요.

꿈에도 언질을 주고 말을 전해봐도

알아듣지 못하니까요. 결국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망자를 모셔서 자손에게 하고 싶으신 말을

잘 알아듣고, 그 뜻을 헤아려서 바라시는 대로

맺힌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승이나

저승이나 종이 한 장의 차이 일뿐이고, 눈으로

보지 못할 뿐이지 사람 사는 이치는 똑같습니다."


난 살며시 일어나서 지장보살님 옆

영가들의 위패를 모신 곳에 가서

소녀를 찾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제는 행복하시지요..?

부모님과 함께 극락왕생하시고

다음생엔 천수를 누리는 삶을 받아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빌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소원암의 신당에 소녀가 다시 찾아왔다.

발엔 양쪽  예쁜  신을 신고 

옆머리엔 어여쁜  핀을 꽂고 

복숭아꽃처럼 활짝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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