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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그 Lee Jul 15. 2024

14. 5년 전에 알려드렸잖아요.(1)

정말 그렇게 될 줄 몰랐지요...

여기는 불교점이다.


내일 천도재가 있어서 스님을 모시고 천도재에 필요한 물품을 장만하러 왔다. 전화로 주문하여 소원암으로 가지고 오라고 하여도 될 법한데 , 스님께선 꼭 인접한 광역시의 큰 불교점으로 직접 가셔서 하나 하나 점검 후에  직접 구매하곤 하신다.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서는 들려야 할 곳이 불교점 한 곳이 아니다. 과일집, 떡집, 마트, 제과점 등  여러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여 차례차례 돌아서 한 차 가득 싣고 오면 정말이지 지친다. 나중에 법당에서 박스를 풀어보면 그 안에는 (언제 사셨는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도 들어가 있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가님을 위한 천도재하고는 상관이 없을듯한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과자랑, 생일 때 촛 불 끄는 케이크랑, 흰 국화가 아닌 색색이 화려한 꽃 바구니 등등이 있다. 궁금해하나 마나 그 이유는 재가 끝나야 알터이다.


영가단에 젊은 남자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놓였다. 지난번에 다녀갔던 큰 키의 젊은 여자, 그녀의 남편이다.


어제 스님께 들은 내용은 이랬다.                           젊은 여자의 엄마, 곧 친정엄마가 소원암의 신도였다. 딸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집을 샀는데 집터도 봐주실 겸 하여 집들이에 와 주시면 좋겠다는 친정엄마의 초청에 스님께선 축하도 하고, 터도 눌러줄 겸 하여 흔쾌히 가셨다고 한다.


집은 32평 아파트에 식구는 부부랑 5살, 4살 연년생 두 딸이었다. 비교적 빨리 내 집도 마련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친정엄마와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부부의 침실인 안방을 거쳐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쓰고 있는 주방 옆의 작은 방으로 갔다. 딸들의 방은 대개가 그렇듯이 핑크로 꾸며진  예쁘고 아기자기한 방에 인형과, 장난감과, 책들이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하는 귀여움 가득한 방이었다.


주방을 지나 현관 옆의 작은 방.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비어있고 나중에 좀 크면 각자 방을 준다고 하더라면서 친정엄마가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모습은 방이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잡동사니가 가득한 모습이다.


" 아이고 여긴 아직 정리가  안되었네요. 스님.       아니, 얘는 안 쓰는 건 버리든지 해야지 여기에 이렇게 다 몰아넣어놓으면 어째..? "  민망함에 친정엄마가 딸에게 잔소리한다.


그런데 방만 그런 게 아니라 그에 딸린 아주 작은 베란다까지 정리 안된 물건이 천정까지 가득하다.


딸이 얼른 달려와 민망하게 웃으며 말한다.

" 이상하게 정리가 안되네요. 맘먹고 정리해도 금방 도로 이렇게 되고, 정리한다고 필요 없는 걸 내다 버려도 또 넣어놓을게 생기고요 ㅎ "


다음날,  친정엄마를 소원암으로 부르셨다.


"보살님, 제 말 잘 들으세요.

제가 영을 보고, 또 듣는 건 아시죠..?"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 싶어 놀란 눈을 하고 스님을 바라본다.


" 따님 집의 그 작은방에 젊은 남자 영가님이 계세요. 전부터 오래 머문듯한데  하루라도 빨리 보내드려야 해요. 아이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사위분에게 영향이 있을 거예요. 한이 있으셔서 그냥은 안되고 재를 올려드려야 해요. 큰 비용을 안 들여도 조금만 정성을 들이시면 가능할 것 같으니까 따님하고 상의하세요.


놀란 친정엄마가 이게 뭔 일이냐고 묻자


" 그 집터에 오래전에 살던 사람이에요. 일이 잘 안 되어 결혼도 못하고 우울증에 자결한 사람인데 가족들이 쉬쉬하고 그냥 이사하고 떠나버렸어요.  청춘 영가님은 한이 많아서  그 한을 풀어서 저승으로 잘 보내드려야 하는데 , 영가님을 아무도 몰라주니 한을 못 풀어서 못 가고, 계속 이승에 머물고 계시는 거예요. "


그래서 작게나마 정성을 들여 천도재를 해 드려야 하고 그렇게 위로해서 보내드려야 따님 집에 변고가 없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사위에게 같은 변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 영가님이 내게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제 자신을 좀 좋은 곳에 보내달라는 뜻이니, 좋은 일 한다 생각하고 잘 위로해서 보내드리자고.

모를 땐 상관없었으나 알고 나선 모른 체 하면 정말 안 된다고..

영가님을 잘 풀어서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면,

고마워서 앞으로 잘 되게 도와 주실꺼라고...

그냥 하는 말 아니니 꼭 내 말 들어야 한다고...

나도 전하는 입장일뿐이라고...

나중에 일이 생기고 나서 가슴치며 후회하지

말라고...


그렇게 스님께선 친정엄마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딸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찬정엄마도 그날 이후에 무슨 연고에선지

소원암에 발길을 끊었다.


딸이 그런 걸 믿지 않고 지금 세상에 무슨 귀신이냐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일축했거나 , 대중매체에서 보듯이 돈 몇 푼에 신도에게 일 시키려고 오해했거나... 뭐 그랬을 것이다.  그런 절에 엄마도 이제 다니지 말으라거나 했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그동안 스님을 알았으니 신도에게 돈을 앞세우는  스님이 아니란 걸 그 딸은 몰라도 본인은 알고도 남음이 있었을 텐데...  결국은 딸을 설득시키지 않았거나, 못했거나  그런 듯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5년이 지났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멀쩡했던 사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게 웬일인가 싶어 놀라고 황망해 어쩔 줄 몰라하다가 예전의 스님 말씀이 떠 올랐던 것이다. 아차 싶었으리라. 그리하여 본인은 염치가 없으니  딸을 앞 세워 스님을 만나고 오라 한 것이다. 딸도 예전에 친정엄마에게 들은 말이 있었고, 본인이 엄마에게 한 말이 있었을 테니 스님을 만나고 싶었으리라...


모든 사람은 그렇다. 꼭 일이 내 일이 되어야 알게 된다. 그리고 본인들이 말을 안 들어놓고 결국에는 남을 원망한다. 그 들도 그랬다. 이제 와서

왜 그때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더 강력하게 얘기해주지 않았냐고...


스님은 사위의 천도재를 거절했다. 그렇게도 간곡하게 부탁을 했는데 모른척 해놓고 이제 와서 날 원망하며 천도재를 올려달라니.. 난 그럴 맘 없으니 정 하겠거든 다른 절에 가서 하시라고... 그러나 사정하는 맘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거두게 되었고 , 그렇게 5년 만에 사위는 영가가 되어 소원암을 찾았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스님 5분이 오셔서 재 준비에 바쁘다. 이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나고 재가 시작될 모양이다. 염불 하실 스님 두 분은 마이크를 차고 목탁과 북을 앞에 두고 좌정하셨고, 바라춤을 추실   스님 두 분도 옷을 갈아입고 자리하셨다. 또 한 풀이 춤과 , 노래로 영가님의 넋을 위로해 드릴 분은 하얗다 못해 푸르른, 곱디고운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쟁반에 물병이랑 자양강장제, 그리고

녹차를 가져다 한쪽에 놓아드렸다. 스님 한 분이

소금을 요청하시어  종이컵에 천일염을 한 줌 담아

물병 옆에 놓아 드렸다. (오랜 염불에 목이 아플 테

니 소금물을 처방하시려는 듯하다.)


북소리가 힘차게 울리더니 목탁소리가 연이어 뒤를 잇고, 우렁찬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소원암에 울려 퍼진다.


자,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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