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는 공감과 대화가 있고 정보가 오고 가는 곳이다. 이곳을 다녀오면 3주 정도는 갑작스레 모임이 만들어져도 별문제 없이 당당해진다고 해야 할까?
오늘이 그날이다. 새치커버를 위해 뿌리염색을 하러 미용실을 가는 날.
둘째 아이 친구 엄마가 하는 미용실에 단골이 되어 편하게 다니고 있다. 아이들 소식이며 여러 관련 정보까지 들을 수 있어서 엄마들과의 교류를 많이 하지 않으려는 내게는 아주 고마운 곳이다.
염색약을 바르고 한 달간 밀린 수다타임 중이었는데 다음 예약인 사람이 들어왔다.
'그림 너무 잘 그리시더라고요~'라는 미용사의 상냥한 인사말에 귀가 쫑긋했다.
나 또한 최근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이라 자연스레 그림이야기를 함께 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 걸려 완성했고 의미가 큰 그림
친구분이 사진을 보내줘서 참고해서 그렸다는 그림
얘기를 나누던 중 그림을 궁금해하니 마치 작품자랑하고 싶어 설레는 아이처럼 휴대폰에 저장된 그림을 보여준다. 그 속에 들어있는 71세의 어르신 그림은 나를 놀라게 했다.
배워서 그린 거냐, 어떻게 시작한 거냐, 얼마나 되었느냐 등 나도 모르게 질문을 계속하게 되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우울해하던 중에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외출이 어려우니 마음의 병은 더 깊어졌다고 한다. 성당에서 우연히 가져온 그림을 보고 집에 있던 연필로 연습장에 그려본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고 잘 그려져 계속 그리게 되었다는데 그 순간은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좋았단다.
그 느낌 알지 알지! 몰입할 때 그 어떤 감정도 고요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경험해 봐서 안다.
처음 사진 보고 그렸다는 그림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아크릴로 그린 그림
어르신은 연필드로잉을 시작으로 문구점에 직접 가서 아크릴 물감을 상점주인에게 물어가며 샀다. 그리는 방법도 물어봤다. 그렇게 준비하고 연습해서 캠퍼스에 그리기 시작했다.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혼자 터득한 방법으로 그린 아크릴회는 색감이며 구도, 표현력등 정말 감탄스러웠고 한편 반성하게 했다.
나 또한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림을 취미로 시작했는데 매일 그려야지 그려야지 하면서 미루는 날도 많았고 디지털 드로잉을 하고 있어 훨씬 편하게 그리면서도 핑계가 많았기 때문이다.
71세의 할머니는 하루종일 그리는 게 즐거워 2-3년을 매달렸다. 그림을 매일 그리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생 몰랐던 재능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아쉽다면서도 전문가에게 그림공부를 더 하고 싶은 꿈을 꾼다. 100세 시대에 너무 멋진 취미로 무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됨을 축하하며 전시와 작가등단도 할 수 있다며 무한 응원하고 왔다.
소소하되 규칙적인 행동을 수십 번, 수백 번 무한 반복해야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하우석 님은 <내 인생 5년 후>라는 저서에서 지독한 연습은 늘 행운과 동행한다는 말을 한다. 생각의 결실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을러짐이 야속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