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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지 Sep 05. 2023

엄마 제삿날에는 손두부 보쌈 먹을래?

제사에 대한 변화

  

아빠가 48년 전 배를 여는 큰 수술 했고 할머니네서 같은 동네지만 분가했다. 아빠의 병간호와 엄마의 고된 시집살이를 벗어나기 위한 일이었는데 한 살 된 나는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첫째로 태어났지만 조부모님 아래서 고등학교를 도시로 나가기 전까지 막내처럼 자라게 되었다.

맏이라는 책임감은 있지만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보이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운명인지 막내로 태어났지만 큰집의 맏이인 남편을 만났다. MBTI 성격유형검사 결과 남편과는 하나도 일치되는 게 없다. 아마도 그런 성격에 매력을 느꼈겠지만 말이다.

딸을 넷 두고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 귀하게 컸으나 맏이라는 책임감이 부여된  비슷한 꼴의 이기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시댁은 제사를 극진히 지내는 집안이다. 당연히 맏며느리인 내게 많은 가르침이 있었고 15년 차 되었을 때 3개가 1개로 합쳐진 제사와 명절이 우리 집으로 넘어왔다.

작은어머니 세명과 함께 준비하다가 혼자 준비하려니 힘은 들었으나 우리 집에서 편한 시간에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차피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유지해야 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와 좋은 맘으로 지내려고 노력한다.    

 

18년 첫 제사와 명절상차림


첫제사와 명절에는 시댁에서 했던 것과 거의 똑같이 더 정성 들여 차렸다. 심지어 만두도 만들었다.

남편은 하나 둘 상차림 음식 종류를 줄이려고 한다. 고지식한 나는 보고 배운 것이 있어 어려운 결정이다. 추진력과 설득력 있는 성격의 남편은 밀고 나갔고 다행히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내게 늘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부모님이시다.

3년이 지난 시점부터 과일이나 과자류의 종류는 제철과일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쌓기 좋은 것으로 바뀌었고, 나물과 소고기 적, 탕국, 밤, 대추, 포를 제외한 다른 것은 가끔은 빠질 때도 있고 사서 놓는 경우도 있다.


23년 제사상차림


이번 여름에 있었던 제사에는 비가 많이 와서 품질이 떨어지지만 값은 금값인 사과, 배, 단감 대신 파인애플, 샤인머스크, 멜론 등의 과일로 대체되었다. 전은 빠졌고 비비고 동그랑땡으로 에어프라이에서 구워졌다. 치킨과 피자도 올라갔다.


가장 큰 변화는 제사시간이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지냈고 뒷정리하고 집에 가면 새벽2시가 되곤 했던 힘든 기억이 떠오른다. 그랬던 시간이 돌아가신 날 저녁 편한 시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 저녁시간에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에게 고맙고 아버님께 감사하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감사와 추모를 위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식에 얽매이고 여자들에게만 국한된 준비에 겪어봐서 알지만 대한민국 며느리들은 너무 힘들다.

힘들다 보면 하기 싫어지고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즐거운 맘으로 치르려면 변화가 필요하다. 함께 준비하고 너무 힘들지 않으며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노력해야 해야 한다.


남편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좋아하던 음식 한두 개 올리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시간으로 만들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아빠 제삿날이 돌아오면 소갈비 먹으며 소맥 한잔과 아빠 기억해 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엄마는?”이라고 묻는다.

“글쎄..” 난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다가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손두부 생각이 났다. 맞다. 나는 손두부와 함께 먹는 보쌈을 참 좋아한다. 청국장, 순두부, 비지찌개 등 콩으로 만든 음식은 다 좋다.

그중에 제일은 손두부다.




어릴 적 설날이 다가오면 수돗가에는 노란 메주콩이 커다란 고무대야에 가득 불려졌다. 잘 불려진 콩은 맷돌에 갈려서 가마솥 가득 삶아졌다. 일 년 내 소금 자루에서 빼낸 간수로 농도를 맞춘 후 삼촌이 짠 틀에 부드러운 천이 깔리고 몽글몽글해진 순두부를 부어 누름돌과 커다란 물통으로 눌러준다.

시간이 좀 지날 때까지 두부틀 주변을 맴돌며 따끈한 두부가 나오길 기다렸던 꼬마시절 내가 생각난다.

드디어 누름돌이 내려지고 나무 뚜껑이 열린다. 하얀 천을 들추고 커다란 칼로 큼직하게 두부가 분할된다. 그중 한모를 먹기 좋게 잘라 김장김치와 푹 삶아진 돼지고기와 함께 큰 접시 가득 담긴다.

김이 솔솔 나는 따끈한 두부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맛있다. 두부에 김치 한 조각 올리고 고기와 함께 입안에 오물오물 먹던 그 맛을 어찌 잊을까.     

아낌없이 콩을 가득 머금은 두부는 요즘 시중 두부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손두부 맛집, 청국장 맛집을 자주 찾는 이유다.



“그래, 엄마 제삿날이 오면 두툼한 손두부와 맛있는 보쌈을 먹으면 되겠네.

엄마 기억해 주고 너희가 자주 만날 수 있는 꺼리가 된다면 엄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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