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마지막으로 서랍에 남아 있던 자른 미역 한봉지는 내가 미역국 끓이느라 다 썼다.
"응,아니야. 한봉지 남았어."
생일 하루 전날 저녁, 아들래미가 스윗한 분위기로 안방에 건너와 내일 미역국을 끓여주겠다는 거다. '이상하네.'하면서도 그렇다니 그런줄 알았다.
정작 생일에 난 아침부터 종일 왠지 모르게 우울하고 일도 잘 안풀려 허둥대고 있었다. 벌써 나흘째 병조퇴를 내고 다친 발목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었던지라 병원 마감시간 전에 맞춰 가려면 밀린 업무를 얼른 처리해야 했다. 자잘한 일거리들이 번호표 뽑아들고 줄줄이 서서 압박해 오고 기대했던 남편의 이벤트는ᆢ 없었다. 생일이라 그랬을까?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 아침 출근 길에 운전하다 찔끔 눈물바람을 했다. 서른이 넘도록 내 생일에 '엄마, 나 낳아줘서 고마워. 키우느라 고생했지?'하며 미역국 한번 끓여드릴 생각조차 못해본 철딱서니 없었던 셋째딸을 기다려주지 않으시고 우리 엄만 왜 그리 일찍 가신 걸까?
어찌어찌 급한 불만 끄고 물리치료 받으러 온 병원. 늘 눕던 침대가 아닌 낯선 자리일 때부터 신경이 쓰이더니 생일맞이 특급 이벤트인가! 왼쪽으로 누워 있는데 오른쪽으로 바꿔 누워라까지는 괜찮았다. 찜질팩이 너무 뜨거워 불렀더니 다시 왼쪽으로 누우라한다. 그랬더니 또 금새 뜨거워지고 또 부르니 찜질 얼마 받지도 못했는데 그건 치우고 적외선 치료기를 갖다댄다. 에구구 1분도 안돼 뜨겁다. 그냥 발을 빼버렸다. 갑자기 설움이 울컥! 멀리 경기도에서 구슬땀 비지땀 흘리며 일하고 있는 터라 남편찬스도 못쓰고 아픈 발로 운전도 직접해서 왔건만 여태 잘해주더니 왜 하필 오늘! 우울이 바닥을 훑으려는데 까똑이 오길래 무심히 열었다. 아들이다.
"대참사"
"미역이 아니라 미역귀였음"
순간 소리도 못내고 빵 터졌다. 사실 아들이 지금 미역국을 끓이고 있을 거란 것도 잊고 있었다. 아침에 뭘 먹겠냐고 엊저녁에 묻길래 아침은 바쁘기도 하고 생각없다, 이른 저녁을 먹자고 해놓고 말이다. 따로 만든 소스까지 곁들인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두 번이나 해준 전적이 있는 아들이긴 하지만 미역국은 솔직히 큰 도전이었을 터! 그래도 미역국은 우리집 단골메뉴라 평소에 내가 끓이는 걸 곁눈으로 봐둔 게 있겠지하고 은근 기대했다.
그럼 그렇지. 미역은 없다니깐.
겉봉에 떡하니 미역귀라 써져 있었을텐데 왕무시하고 그 미역귀님을 물에 불리고 나서 국에 넣으려는 순간, 뭔가 이상했을테지. ㅎ
위기를 기회삼아 전화위복 중이란다. 너튜브를 뒤지니 미역귀로도 미역국을 끓일 수 있다나뭐라나ᆢ 치료를 마치고 마침 바로 옆이 한살림 매장이라 거길 들러 자른 미역과 기타 등등을 사서 부리나케 집을 향했다. 부엌에 반쯤 넋이 나간 스무살 아들이 갈길 잃은 등짝으로 나를 맞이한다. 가스불 위엔 덩어리째 미역귀 네다섯송이가 빠진 멀건 고깃국물이 미친 듯이 팔팔 끓고 있었다.
"엄마가 할 게."
미역을 다시 뜨건 물에 불리고, 두부를 참치와 김치를 넣고 졸이고, 굴비를 굽고, 급한대로 조갯살과 새우살은 생략한 채 고기와 명란만으로 후다닥 미역국을 다시 끓이면서 난 이미 행복한 내가 되어 있었다. 첫새벽에 안 자고 보낸 큰딸의 애교 넘치는 생축톡을 오후 늦게서야 봤고, 큰형부부터 막내동생까지 가족단톡에 가득 생축 메시지가 넘실~~ 엄마 좋아하는 모카케잌을 사온다고 무건 책가방을 메고 케잌상자에 우유까지 사서 20여분 거리를 걸어 오느라 진이 다 빠진 우리 막내딸의 스페셜한 생축을 받을 때쯤엔 언제 우울모드였나 싶게 발 아픈 것도 잊고 즐거운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망친? 미역국 대신 아들은 제법 맛을 낸 호박볶음과 감자볶음으로 끝까지 스윗했다. 짜슥! 누나의 퍼펙한 생일 한상차림을 따라가려면 멀~~었다만 나름 감동있는 선방으로 기억하마. 남편의 알록달록 드립커피백 택배선물이 뒷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조카 녀석들의 깜짝 생선공세도 한몫 톡톡히 했고 저녁을 한상 차려 먹고 설거지는 널브러 놓은 채 우리는 거실에 둘러앉아 케잌타임, 루비큐브 보드게임으로 화려한 생파를 마무리했다.
생일이 뭐 별 거야? 아니 별 거 맞아. 함께 하는 이들 속에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날들이 어땠는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하루쯤은 기쁘게 또는 진지하게 되묻고 짚어보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쉰 두해를 헛살지는 않았구나. 또 용기를 내 내 삶에 웃음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