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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람 May 04. 2023

3년 만에 결제한 밥솥

2020년 2월 일기

왜 밥솥과 자전거를 원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늦게 퇴근하니 집에 있는 시간도 적은데 독립하면서 햇반만 돌려먹었다. 그러다 보니 밥솥으로 따뜻하게 해 먹는 밥이 그리워졌다. 그 밥을 내 손으로 짓고 싶었다. 좋아하는 잡곡류를 넣어서 씹을 때마다 고소한 맛이 올라오고, 물을 조금 더 넣어서 살짝 쫀득거리는, 그 밥. 그리고 자전거는 내가 이사 온 새로운 동네를 탐험하고 싶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어디든 가고 싶어서. 그러다 내 취향에 맞는 카페나 소품 가게를 발견하거나 도서관에도 가고. 동네사람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센터들도 발견하는 재미. 작은 빵집에서 독서 모임을 주최하는 곳을 또 발견하고 싶어서.

참 소소하지만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느껴지는데. 나는 왜 스스로에게 2, 30만 원 투자하는 것도 힘겨워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속상해졌다. 다음 달에 좀 궁핍하게 살더라도 나에게 밥솥과 자전거를 사주자. 결정하니 마음이 너무나 가뿐하고 행복하다. 없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과 행복, 어려움 등을 느끼겠지.

자기 연민이 글에 담기면 안 된다는 한 편집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2020년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이 사과를 굳이 브런치에 올리는 건

당신이 나처럼 스스로에게 옹졸하지 않길

당신의 밥상 위 밥이 따듯하길

이 마음을 다 해 기도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음이 너무나 가뿐하고 행복하댔는데...

사실은 말이야, 나 일기 쓴 다음날에도 삼십만 원 쓸까 말까 고민했어

그 고민을 내가 3년씩이나 했다니 참 놀랍고 참 우습다, 그치?

지금 당장 네가 사고 싶어 했던 밥솥 결제했어

이제 같이 밥 해 먹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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