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샀다. 어제 언니를 주려 산 빵이 맛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엄마는 서운해했다. 그래서 빵을 또 샀다. 하나 더 얹어 샀다.
주는 기쁨을 알아버렸다. 중고등학생 시절 유치원생인 동생에게 내 남은 간식을 남겨 갈 때부터,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 일도 어렵다고, 부쩍 느낀다. 다른 이것 저것은 못해도 그나마 내가 가질 수 있는 목표라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범위를 좁히고 좁혀 가족으로 국한해도 좋은 딸,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는 못하겠다. 역량의 한계를 느끼지 않는 날이 없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꾸 돌아오는 꼴이 우습다. 줄 능력 없이 영영 받기만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그 사랑을 이용해먹는 자식새끼. 그런 놈팽이가 될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미 그런 것 같다. 두려움이 밀어닥친다.
봉투를 드려야할 날들이 다가온다. 자식된 도리를 해야할 날들. 그리고 이 망할 자식놈은 부모 눈 가리기에 급급하다. 아직은 그 날이 오지 않았다고,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이번엔 빵 쪼가리로 또 눈을 가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