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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려 May 02. 2024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엄마

폭풍우 같았던 며칠이 지나갔다. 사랑하는 아들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날, 대입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출발점에서 아들은 참패를 맛보았다. 점수를 듣고 나는 믿기지 않았다. 

이런 점수가 어떻게 나올 수 있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어릴 적 공부를 잘했던 남편 또한 아들의 성적에 낙담한 표정이었고, 집안 분위기는 착잡해졌다. 

나 역시 마음이 복잡했지만, 심호흡을 크게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4일 동안 점심시간이 되면 아들에게서 전화벨이 울린다. 시험마지막 날인 점심시간,  손님과 식사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하고 문자로 '지금은 통화가 어렵다'고 전달하고 끊었다. 시간이 지나 아들에게 전화를 걸자 아들은 친구들과 고기를 먹고 있다고 한다. 나는 점수에 대해 묻지 않고 '맛있게 먹어라'는 말을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엄마, 죽고 싶어요." "엄마, 나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아들의 한마디는 평소 긍정적인 아들의 자존심이 바닥을 친 것 같았다. 자신도 예상치 못한 성적에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점점 없어진다. 스스로 이겨내야 할 전쟁터가 펼쳐지는 것이다.

며칠간 참고 있던 나마저 아들의 말에 무너져 내리며 큰소리를 내질렀던 지난밤이 생각난다. 

밤 12시가 넘어 들어온 아들은 풀이 죽어 있다.  '엄마,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들 스스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신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이렇게 사랑하는 외동아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옛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학생은 공부를 통해 더 행복한 미래를 설계해나가는 길을 걷는다.  

아침, 평소 늦잠을 자고 뒤척이던 아들이 한 번의 부름에 벌떡 일어났다.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마흔이 넘어가는 엄마 또한 자신의 인생조차 잘 모르는데 하물며 아들에게 무슨 조언을 하겠는가.


심호흡을 한 후 아들을 다독였다.

"아들아, 인생은 죽을 때까지 앞길을 모르는 거야. 공부를 잘한다고 대학을 잘 간다고 끝이 아니란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를 한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지. 진정한 끝은 내가 하늘나라로 가는 그 순간일 뿐이야."

앞으로 우리 아들에게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른다. 첫 시험에 낙심하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더 큰 미래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인생에는 변곡점이 있고, 그때의 선택에 따라 삶의 굴곡이 바뀌게 된다.

지나간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는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성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는 아들을 믿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오늘밤, 아들과 함께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더 큰 꿈을 그려볼 것이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엄마는 그렇게 또 힘을 내어야한. 

그리고 쉼 호흡을 하며 나의 마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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