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커피향 가득한 카페에서 마주한 나의 이야기
바스락 바스락. 발걸음마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오랜만에 '가을'이란 단어가 마음에 스며드는 날이다. 무척이나 무더웠던 여름이 길었던 탓일까, 가을은 이렇게 천천히, 아주 늦게 그렇게 자신의 색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나의 인생처럼.
힘들었던 10월, 내가 힘에 겨워하던 그 시간 속에는 하늘도 나무도 자연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커피향 가득한 이 공간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완연한 가을의 모습이다. "나 가을이에요"라고 속삭이듯 말하고 있다.
잔잔한 호숫가 곁에 자리 잡은 예쁘고 조용한 카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평소라면 자연스러웠을 이 고즈넉한 공간의 활기가, 오늘따라 심신이 지친 내게는 소음으로 들려온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 걸까. 항상 들려오던 사람들의 소리가 귀에 격하게 부딪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동안 내 귀에 들려온 말들이 너무나 고약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내 귓가에 들리는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운 지금이다.
문득 커피잔 옆에 놓여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가슴 시린 누군가의 모습이 담긴 '나의 아저씨'.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그렇다. 버티는 인생. 그렇게 오랫동안 버텨온 나의 인생이 요즘 한없이 작아진다.
세월을 정면으로 부딪히고 맞아가며 살아온 시간들... 그러한 시간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데. 마흔의 중반이 넘어가는 지금의 나는 내 귀에 들린 악한 소리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녀져갔다.
갔다.
그렇게 갔다.
갔다... 그리고 마침표.
하지만 인생은 마침표로 끝나지 않는다. 한동안 뒤숭숭하고 역했던 감정들이, 창밖에 보이는 가을의 모습과 낙엽 소리로, 나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로, 그리고 은은한 커피향으로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다시금 나의 내력을 키우는 시간들을 보내는 나는 여전히 사십춘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따금 세상을 많이 알았고, 그만큼 살았고, 얻어맞아도 버틴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여전히 아니었다.
아프다고 모두가 성숙해지는 건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하다'는 말을 세상 그 무엇보다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고 그리고 조금씩 성숙해진다. 성숙이 성숙되면 나는 어느새 성장해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테니까.
가을이 깊어가는 오후, 호숫가 카페에 앉아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일어서고,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중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단단한 돌도 물방울이 떨어지면 구멍이 난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구멍 난 자리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이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까.
창밖으로 또 한 장의 낙엽이 떨어진다. 바스락, 하는 소리가 이제는 위로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