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에서 잘 사는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가도 잘 살 수 있다
요즘 들어 흉악범죄, 혐오범죄들이 매스컴에 자주 떠돈다. 진짜 사회가 병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분에서의 도덕, 윤리 관념이 점점 무너져 가는 것 같다. 대체 어떤 이유로 사회가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잘 키워내야 사회가 잘 돌아간다. 어느 계층에 있는 사람인가를 불문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존재로 바로 선다면, 사회는 건강하게 잘 돌아간다. 교육체계가 잘 이루어져 있다는 북유럽 국가의 사회는 건강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고 전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 사회가 지금 이러한 상황에 놓인 것은 교육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따져보면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라는 뜻으로, 가르칠 교(敎)와 기를 육(育)이란 글자가 조합되어 있다.
교(敎)는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듯, 삶의 방법적인 측면을 이끌어주는 것이고, 육(育)은 인격을 길러 줌을 의미하듯, 삶의 본질적인 측면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교 보다 육이 더 중요하고, 육이 교에 앞서서 먼저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보기에 앞서, 흔히 가정교육이라고 불리는, 교육의 근본이 되는 양육(育)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려 한다.
현대사회는 양육(가정교육)이 무너진 사회다. 불경기의 여파로 부모 모두 맞벌이를 하러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아이는 보육시설에 방치되는 일이 많아지고, 여성들도 출산과 육아에 얽매여 자신의 꿈이 단절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차 양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감이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게 정작 중요한 양육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아이에게 좋은 교육시키겠다고 너 나 할 것 없이 큰돈을 들여 비싼 학원, 영어 유치원, 이름 있는 학교 찾아다니며 아이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이 교육에서 근본이 되는 것은 교(敎)가 아닌 육(育)이다. 양육(育)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가르침(敎)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양육의 근본이 되는 존재가 부모다. 유아는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모르고 주변 환경의 모든 것을 필터링 없이 흡수한다. 그래서 유아는 자기가 모방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행동에 대한 부모의 반응을 통해 가치관, 습관, 도덕관념을 형성해 나간다.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반응이 없다면, 아이는 혼란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를 갖추지 못한 그런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사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아이가 적어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부모의 품 안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부모의 행동과 가치관을 모방하며 충분히 동화될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 발달의 순리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아이의 신체적, 정서적으로 건전한 발달을 위해서라면 보육시설에 맡기지 않고 부모가 아이를 직접 돌봐야 된다. 엄마가 됐든 아빠가 됐든,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주 양육자가 되어 아이와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부모가 그 역할을 할 수 없는 피치 못한 사정이 있다면 부모를 대신해서 양육을 전담할 수 있는 주양육자(가정부나 조부모님 등)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같이 놀아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애 보느니 밭 맨다는 속담도 있듯이, 아이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긴장된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오죽했으면 숨 좀 돌리고 싶다고, 전업주부조차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와 함께 있으면 아이에게 꼭 뭔가를 해 줘야 할 것 같다고 느끼는 부담감 때문에 힘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을 노동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한데, 부모가 자기와 함께 있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면 아이가 행복할까?
아이한테 24시간 메여 있을 필요는 없다. 아이는 부모가 곁에 있다는 안정감만으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취학 전의 아이는 굳이 또래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주변의 것을 놀이로 승화시키며 무한정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자기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아이를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된다. 지켜봐 주면서 부모가 즐길 수 있는 일이나 자기 계발을 하면, 아이는 그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며 또 다른 놀이로 승화시키면서 혼자 자기의 놀이에 몰입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메여 있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고, 아이는 부모가 곁에서 자기를 지켜봐 주는 안정감으로 맘 놓고 놀면서 스스로 성장시켜서 좋고, 일석이조의 방법인 것이다.
취학 전의 아이를 위한 양육방식은 "우물 안 개구리"로 키우는 것이다. 아이에게 우물은 "가정"이다. 가정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가정 안에서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고, 가정 안에서의 바람직한 생활에 익숙해지게 키우는 것이 취학 전의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양육 방식이다. (취학 전 아이에게 또래 친구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또래 친구들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흔히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자. 우물 안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개구리와, 우물 안의 생태계도 잘 모르면서 우물 밖으로 나가서 살려는 개구리 중에 어느 개구리가 더 잘 살까? 인간사회에 대입해보자면, 가정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아이와, 가정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밖에서 모르는 이들과 공동체 생활하는 아이와 어느 아이가 더 잘 자랄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는 부모의 양육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우물 안 개구리" 양육이 잘 되어야 추후에 우물 밖으로 나가도 맘 놓고 보내줄 수 있다. 우물 안에 살면서 우물 안의 작은 생태계를 체험하며 방향감각을 익혔기 때문에, 큰 생태계로 나가도, 길을 잃지 않고 잘 헤쳐나갈 수 있다. 우물 안의 생태계만 고집하여 우물 밖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각자의 정해진 때가 오면 자기가 살아왔던 울타리 안의 세상을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 홀로서기를 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질 때가 온다. 그때가 왔을 때 조금씩 놔주면 된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 홀로서기의 욕구가 왕성할 때 바깥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면, 우물 안 생태계만을 고집하며 바깥세상의 삶에 적응을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깥세상의 삶에서 의욕적으로 자기만의 생존방법을 터득해 나갈 것이다.
우물 안에서 살았던 자기 경험에 얽매여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는 경우는, 홀로서기의 욕구가 왕성할 때 우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붙잡아 뒀을 때다. 홀로 서야 될 때 홀로 서지 못하고, 우물 안의 세상이 전부구나 하고 체념하며 살고 있으면, 갑작스레 우물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당연히 혼란스럽고, 힘들고, 두려울 것이다. 요즘 청년세대들이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우물 밖으로 나가 홀로 서야 할 시기에, 홀로 서고자 하는 욕구를 억압당한 채,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한 입시공부에 매진하느라, 입시를 위한 공부를 제외한 모든 걸 체념하고 살아가다가, 갑작스레 사회에 내던져졌을 때 두렵고, 혼란스럽고, 힘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의 문제는, 이처럼 우물 안에 붙잡아 둬야 할 때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할 때 우물 안에 붙잡아 두려고 해서 문제다.
그럼 우물 안에서 살아가야 할 때(생후~10세 전후)에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는 게 좋을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깨끗한 우물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바른생활, 행복한 가정 분위기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우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
(괜히 우물 안에서만 살다가 내 아이만 도태될까 봐 스마트폰 쥐어주고, 신문 보게 하고, 이른 외국어 공부시키는 건, 아이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우물은 지루하고 불행한 곳이구나 하는 걸 심어줄 우려가 있다.)
그럼, 깨끗한 우물인, 안정적인 가정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① 자연스러운 양육
-인간은 자연환경에서 살아야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지친 일상에서 평온을 되찾기 위해 산으로, 들로 치유받으러 가는 것이다. 아이는 자연에 가까운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훨씬 더 자연환경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성장한다. 매일매일 자연환경을 찾아 소풍을 나가자. 숲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아이들은 숲 속에서 자기만의 놀이를 창조하는데 정신을 쏟을 것이다.
-자연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들은, 인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특히 어린 유아들한테는 더더욱 그렇다. 화학물질이 들어간 일회용 기저귀, 합성세제, 샴푸, 합성수지 장난감 등을 쓰지 않고, 천연 대체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이를 더 예쁘게 꾸민다고 아이의 신체를 인공적으로 꾸미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된다. 특히 이발, 염색, 파마 등등... 정말 강조하고 싶은 말은, 아이는 인형이 아니다. 최소한 유아기까지는 머리를 자르지 말고, 염색, 파마, 네일아트, 피어싱도 하지 않는 게 좋다. 자연스러운 신체가 아이에겐 가장 좋은 성장환경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둬야 한다.
②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는 양육
-아이들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안정감을 얻는다. 너무 잦은 변화가 일어나는 일상에서는 아이들은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매일, 매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에게 너무 많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는 익숙한 사람하고 오래 함께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익숙한 사람에 대해서 파악하기도 전에 이 사람 저 사람 겪게 되면 아이는 혼란스러워하고,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이나 습관에 대해 일관성 있게 반응해야 한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꾸짖고, 잘한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해 준다. 상황에 따라 잘못된 행동에 대해 눈감아 주거나, 잘한 행동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등, 일관적이지 않은 반응은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부모의 예측 가능한 반응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의 도덕관념과 가치관을 만들어 나간다.
③ 평온한 환경을 제공하는 양육
-과하고 자극적인 자극은 아이를 불안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다. 너무 시거나 달거나 짜거나 맵거나 쓴 음식, 너무 밝은 빛, 시끄러운 소리, 지독한 냄새, 과격한 행동 등은 아이의 감각을 바늘로 찌르는 것과 같다. 싱거운 음식, 은은한 빛, 고요한 소리, 은은한 향기, 절제된 행동이 아이의 정서를 차분하게 만든다.
-평온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아이에게 긍정적인 본보기가 될, 바른 언어와 행동을 부모가 앞서서 실천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깨끗한 우물을 만들었으면, 그다음으로는 깨끗한 우물에서 충분히 노닐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물 안에서 행복함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따뜻하게 품어줘야 하고, 우물 밖의 더러운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한다.(미디어, 성 고정관념, 쓰레기 무단투기 같은 법규위반 등등)
유아기에는 순수함, 안정감이 무엇보다 커다란 가치이다. 안정감이 지속되어, 삶은 행복한 것이구나 하는 걸 몸으로 체화해야, 우물 밖의 세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다가갈 수 있다. 너무 일찍 우물 바깥세상에 눈을 뜨면, 아이는 그 혼란스러움과 두려움 속에서 아이다운 순수한 모습을 잃어버릴 것이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영악하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오히려 염세적인 태도를 가지고, 이기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이 하나 잘 키우자고 지켜야 하고 삼가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부모가 힘든데 아이가 행복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양육이 인간 성장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부분이기에, 크게 강조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부모들은 매스컴에 떠도는 흉악범죄 소식을 접하면서, 자식 키우면서 '사고를 당할까' 두렵고, '사고를 칠까' 두렵다고도 말한다. 그만큼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감과 불확실함에 맘을 졸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 양육을 충실히 하면, 그런 고민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비윤리적으로 급물살을 탄다 해도, 자기는 가정 안에서 충분히 습관이 베었던 바른 가치관의 힘으로, 급류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