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아! 오늘은 어버이날.
아들은 감사장을 전달하겠다면서 우리 둘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들 앞에 나란히 섰다. 마치 교장 선생님께 상장을 받는 학생처럼 차려 자세를 취하고서. 배경 음악이 낮게 깔린 분위기에서 아들은 감사장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먼저 받고 나는 그다음 순이었다.
<감사장,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 귀하께서는 한평생 희생하고 헌신하며 든든한 버팀목으로써 가정의 행복에 기여한 바가 크기에 이 감사장을 드립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앞으로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우리는 아들의 감사장을 받고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하며 악수까지 했다. 아들의 커다란 손은 따스했다. 함박꽃보다 더 활짝 핀 얼굴로 소리 내어 웃음으로써 감탄을 표시했다. 케이크에 촛불을 켠 아들은 ‘어머니 은혜’를 씩씩하게 불러주었다. 아들이 혼자 기획하고 거행한 어버이날 기념식은 사진 촬영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매년 어버이날이면 어김없이 이벤트가 있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색달랐던 것 같다. 우리는 연신 ‘고맙다’라는 말을 이으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뒤따라나가 출근길을 친절하게 배웅했다. 아들의 뒤통수조차도 믿음직스러워 보인 건 기분 탓일까.
우리는 각각 받은 감사장을 자세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금테까지 두른 큼지막한 글자가 가슴 깊숙한 곳에 또박또박 박혔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꽃길만 걸으세요> 왼쪽에는 하나하나 투명 봉투에 넣은 지폐가 층층으로 붙여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감사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늘 같은 날에 감탄사가 술술 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평소 ‘사람은 감탄을 먹고 자라는 법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니 더욱 그렇다. 아들에게 최고의 보람을 안겨주려면 최고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길뿐이다.
감사장을 그대로 덮어 책꽂이에 나란히 끼워두었다. 찻잔을 앞에 둔 우리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오늘은 어버이가 된 기분을 만끽해 보자고 하는 순간, 아들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가 사고 싶은 것을 꼭 사세요. 생활비로 쓰시면 절대 안 돼요.”
갑자기 돈을 그대로 넣어둔다면 분명 섭섭해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잖아도 출근할 때 몇 번이나 힘주어 강조하지 않았나. 사고 싶은 것을 꼭 사라고.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다시 감사장을 펼쳤다. 투명 봉투에 한 장씩 들어있는 지폐를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부모의 입에서 나올 감탄사를 유도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껏 꼼꼼히 싸맸는지 돈을 다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안을 유지하느라 나오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오래도록 부스럭거렸던 이유가 충분히 이해됐다. 겉으로는 오만 원짜리 다섯 장과 만 원짜리 다섯 장인 것처럼 보이더니 막상 여러 장이 겹쳐 있는 게 아닌가. 세어보니 오만 원짜리 열 장에 만 원짜리가 여덟 장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돈을. 그것도 따로따로 준비했다고?’
순간, 총 맞은 것도 아니면서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먹먹해졌다. 고마운 마음이 싹둑 잘려 나간 그 자리에 찡한 울림만 뾰족뾰족 돋아나려 했다.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쥐꼬리만 한 월급을 거의 다 소진한 셈이니 이를 어쩌나.
어렵사리 빼낸 돈을 지갑에 챙겨 넣는 남편과는 달리 깊숙한 곳에 돈을 넣어둔 나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어떻게 써야 아들이 기뻐할까?’
신신당부는 했어도 어떤 용도로 써야 할지 은근히 고민스러웠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왜 오십팔만 원이지?”
여보슈, 눈치코치가 없어도 분수가 있지. 5월 8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요.
이백만 원도 채 안 되는 공무원 월급에 엄마와 아빠를 굳이 따로 챙길 것까지는 없는데. 오만 팔천 원을 준비했더라면 이토록 마음이 아리지는 않았을 텐데. 과분해서 슬플 때도 있겠구나 싶으니 요즘 말로 웃픈 상황이 된 듯하다.
며칠 전에 지하철 안에서 노신사 옆에 앉아 있다가 본의 아니게 전화 내용을 엿들었던 게 떠올랐다.
“여행 보내 준다고? 그래. 네 엄마는 좋아하지. 그런데 몸이 아파서 아무 데도 안 간대.”
보나 마나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자식의 전화였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자식이지만 부모를 챙기려는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신체의 변화로 인해 자식의 호의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는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일까.
어버이날을 앞두고 식사 초대를 받았다는 선배도 있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합동 식사 자리인데 알고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당이라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입맛에 맞췄겠지, 하며 입꼬리를 내리는 말투였어도 부모 챙기는 자식을 은근히 자랑하려는 심리도 깔린 듯했다.
오늘은 자식한테 감사장까지 받으며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다. 내 엄마는 자식한테 무조건 퍼주는 성품을 갖고 태어나 희생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자식한테는 몽땅 주면서도, 받는 것은 거부하기 일쑤인 엄마의 유전자를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나 보다. 주는 건 당연시하면서도 자식한테 받는 건 왜 이렇게 안쓰럽고 미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