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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Dec 25. 2023

누가 왜 변심했을꼬

초심으로 돌아가자

"와! 100이다!"


감격적인 날이었다. 85명에서 잠자고 있던 구독자 수가 나도 모르는 사이 93명으로 수직상승하더니 이윽고 100을 찍다.

'드디어 내 양쪽 어깻죽지에도 브런치 날개가 돋으려는 징조인가?'


쓸까 말까 망설이던 글 한 편을 용기 있게 올렸는데 대박을 친 것이다.'첫 월급을 몽땅 시부모님께'라는 제목의 글인데 올리자마자 조회수가 펄쩍펄쩍 높이뛰기를 한다고 알려왔다. 물론 조회수와 라이킷 수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기분 좋았다. 그 사이 2천에서 3천으로 조회 수가 쑥 올라갔다. 조회수가 많다 해서 구독자 수가 증가하는 것도 절대 아니라 침착하게 지켜만 보고 있었다.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라 3천에서 4천을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알림톡으로 친절한 안내 방송까지 실시간으로 해주고마움은 배가 되었다. 4천에서 5천으로 바뀐 조회 수가 저녁 무렵 9천으로 껑충 뛰는 바람에 구독자 수도 덩달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99! 100에 까이 근접할수록 초조불안이 커지면서 조바심까지 났다. 스마트 폰을 몇 분 간격으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느라 손에서 떼어 놓기가 힘들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면서 브런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지 않았나. 빨리 100이라는 고지에 올라타고 싶지 그 고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제풀에 꺾일 때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자.'하고 문고리를 잡았는데 묵직한 느낌이 다.


믿어지지 않는 숫자, 100!

오, 세상이 이렇게 아름웠던가. 구독자 100명이 되었다는 사실에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역시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종교인인 내가 신까지 들먹이게 될 줄이야.

 

나는 여기저기에 대고 나발을 불었다.

'구독자 100인을 모시게 되었으니 이젠 됐어. ' 

아낌없는 박수함께 기뻐해주는 식구들 표정에도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엄숙하게 선언하면서 스스로한테도 다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구독자 100명만 되면 더 욕심내지 않겠다는 얼마 전의 결심이 떠올랐다. 100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은 최소한 구독자가 이 정도는 되어야 글을 씁네, 하고 슬쩍 명함이라도 한 장 내밀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조금만 더 힘을 내봐. 스스로에게 격려하며 여기까지 왔다. 젖 먹던 힘까지 탈탈 털어서라도 구독자 늘리기에 보탬이 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누가 봐도 젖 먹던 힘을 낼 사람은 내가 아닌 내 영역 밖의 일인데도.


이상한 건 목표 지점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경세포는 제자리 지 않고 폰에 머물다. 역시 사람 욕심이란 이 없나 보다. 혹시 구독자가 더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했으니. 하지만 여전히 100에 머문 숫자는 더 이상 올라갈 기미가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식구들에게 브런치 예찬을 펼치면서 다양한 글을 찾아 읽 시야를 넓히라 강요했다.


그런 와중에도 내 눈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그 사이에 혹시 101명이 되지 않았을까? 해서. 참지 못하고 슬머니 브런치 글마당을 열고 문턱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 눈에 들어온 숫자는 100도 아니고 101도 아니었다.

"안 돼! 이럴 수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온 세상을 다 잃어버 듯 몸을 축 늘어지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숫자, 99였다.


참으로 몰인정하기 그지없는 세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차라리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면 굳이 실망도 없었을 텐데 잠시라도 이상세계를 다녀왔기에 너무 허무했다. 아, 누가 변심을 했단 말인가? 변심한 이유는 도대체 뭐고?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구독까지는 못 미친다 판단한 건가? 어쩌면 의도치 않게 실수로 구독을 눌렀다가 마땅히 취소했다는 건가.


아무리 그렇더라고 간신히 100을 채워 환희에 빠져있을 작가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너그러움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주었다가 도로 빼앗아 가는 심보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신이시여, 제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했던 100을 주신 지 단 몇 시간도 안 되어 1을 도로 가져가시다니 너무 가혹합니다. 독자를 탓했다가 신을 탓했다가 정신은 이미 혼미해진 상태였다.


이대로 자포자기할 수는 없었다. 변심자를 찾겠다는 막연한 심정으로 그냥 한번 구독자를 꾹 눌러보았다. 99명의 구독자 이름들이 쭈욱 펼쳐졌다. 구독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성껏 세심한 눈초리로 살펴보았다. 내가 구독하는 분들의 익숙한 이름도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닉네임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유능한 탐정일지라도 변심자를 색출해 내기란 역시 불가항력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배신하지 않고 자리를 굳건지키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겨우 안도했을 뿐.


내 이럴 줄 알았으면 100명 찍었을 때 얼른 구독자 이름을 몽땅 복사해 놓을 걸. 그렇게 했더라면 일일이 대조를 해가면서 누가 변심을 했는지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사전 예방책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범인을 어디 가서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잠시 머리를 흔들어 제정신을 차려보았다. 찾으면 또 어쩔 텐가. 따지기라도 해 볼 건가? 왜 구독했다가 취소했냐고,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내가 생각해 봐도 참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브런치 스토리'라는 글 쓰는 마당을 알게 된 것은 오래전이지만 자세하게 알아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이것부터 다 끝내고 나서 해야지.'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해야지.'

'지금보다 상황이 좀 더 편해지고 나면 시작해야지.'

순전히 나의 게으름 탓이다. 직장 다닐 때는 퇴직하고 나서 해야지, 하고 미룬 것이 퇴직하고 나서는 바로 친정부모님 병원 돌봄 하느라 또 미뤄졌다.


나의 이런 핑계에 브런치 작가님들은 손가락질할 게 분명하다. 특히 왕성한 열정으로 마당에서 내 집처럼 마구 뛰어노는 작가님들은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째려 게 분명하다.   

'그럼 뭐, 우리는 할 일이 없어서 컴퓨터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주야장천 글을 쓴다는 건가?'

앤디 앤드루스가 쓴 자기 계발서인 '폰터 씨의 위대한 하루'가 새삼 떠올랐다. 나한테 일어나는 모든 잘못의 책임자는 바로 본인이라 지적. 책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남의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못났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도 어언 11개월이 지나간다.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기쁨에 고무되어 내가 왜 진작 이런 글마당을 가까이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 늦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으 무슨 소용인가. 지금부터라도 착실하게 쓰고 발표해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구독자 100명은 온 세상을 얻은 기분을 주었고, 100에서 단 1이 빠진 99는 온 세상을 빼앗 허탈감을 주었다. 이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하지만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100이든 99든 무신경하게 다시 시작하려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그대로 묵묵히 쓰는 도리밖에 없다는 걸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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