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심리학 24. 습관화
습관화(Habituation) : 반복적인 상황이나 자극에 익숙해지는 현상
우리는 1시간 전에 뿌린 향수의 향을 쉽게 맡을 수 없다. 이미 내 후각이 그 향에 적응해버렸기 때문이다. 감각 적응 현상, 이는 지난 글(https://brunch.co.kr/@doyeong/28)에서 들었던 예시 중 하나이다.
우리는 감각 자극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반복적인 자극 및 상황에 점차 익숙해진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던 때를 떠올려보자. 처음엔 집의 구조, 냄새, 소리, 그 외 모든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익숙해진다. 어느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해야 할 일을 여전히 잘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주의 깊게 바라보고 싶었던 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함에도 익숙해진다
공중 화장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핸드 드라이어를 떠올려보자. 나는 두 종류의 핸드 드라이어가 떠올랐다.
언제는 전자의 핸드 드라이어를 사용하며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대체 손을 어디다 둬야 센서가 작동하는 거야?'
손을 말리다가 갑자기 바람이 멈춰서, 센서에 손을 가까이 대보기도, 조금 멀리 대보기도, 손을 뺐다가 다시 넣어보기도 했다.
결국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긴 했다. 손을 뺐다가 다시 넣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후론 비슷한 핸드 드라이어를 마주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내가 원하는 건 '빠르게 손을 말리는 것'이지, '센서의 동작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아니니까.
후자의 핸드 드라이어는 손이 위치해야 하는 공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에, 그런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때 느꼈던 불편함은 어느새 불편하다고 인지하지 못할 수준으로 익숙해진다.
즉, 어떤 디자인의 핸드 드라이어든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원 버튼을 찾느라 잠깐 버벅댈 수 있다. 이 문이 미닫이 문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문 손잡이를 여러 번 조작해보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디자인을 할 땐, 그러니까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땐, 이 '불편함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을 캐치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만든 사람조차 그 불편함에 익숙해져 버린다면, 그 제품이 더 좋은 디자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워질 것이다.
좋은 사용자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디자이너는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꼭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닐 거다.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것들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 곳에, 내 일상을 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키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