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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수 May 04. 20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커리어 고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커리어 고민


  <빅 리틀 라이프> 9회의 제목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커리어 고민'이었다. 기획 단계부터 한 회 정도는 내 또래,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5년이 갓 넘은 사람들의 커리어 고민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직업의 세계라는 것이 한 개의 실로 코를 잡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한 탓에 오랫동안 구성 방식에 대해서 갈피를 찾지 못했다. 예정된 릴리즈날짜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도 9회의 오디오트랙은 텅 비어있었다.  


  묘안이 떠오른 건 친구와 다른 주제로 전화인터뷰를 하던 중이었다. 인터뷰 마무리를 할 때쯤, 오랜만의 전화통화가 반가워 이런 저런 안부를 주고받았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라서 신혼 생활은 어떤지(친구는 어지간하면 결혼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최근에 이직했다는 회사는 다닐만 한지, 코로나로 인해 업무 환경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리고 요즘 어떤 커리어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요즘 급부상하는 IT기업인 '네카라쿠배 당토 직야(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직방, 야놀자)'에 성공적으로 이직한 지인들의 소식도 공유했다. 우리가 함께 알고 있는 한 후배는 최근 저 ‘네카라쿠베 당토 직야’ 중에 한 군데로 이직했는데, 마침 내가 며칠 전 그 후배를 만나고 돌아온 터라 소식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후배가 직접 증언해준 회사의 현실과, 전화를 하고 있는 이 대기업 회사원 친구의 기대가 묘하게 어긋나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 대기업 개미 걔는 전문성이 있잖아. 같은 회사원이래도 나 같은 일반 회사원이랑은 다르지.

  장도수 PD  왜 그렇게 생각해? 

  일반 대기업 개미  전문적으로 글 쓰는 일을 하잖아!


  며칠 전 그 후배는 내게 '글 쓰는 일'에는 뚜렷한 전문성이 생기지 않는다며 고민을 토로했던 참이었다. 바로 여기서 구성의 열쇠를 찾았다. 사람들이 흔히들 부러워하는 직종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사람들의 기대와 당사자의 실상이 엇갈리는 지점을 포착하는 것이다. 사실 그 구성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송출을 고작 일주일 앞두고도 텅 비어있는 오디오트랙을 가만히 지켜보느니, 고민들을 이어 붙여서 내보내기라도 하자고 생각했을 뿐이다. 저마다 본인의 커리어 고민을 털어놓다보면 실제 경험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하이퍼리얼리즘적인 웃음코드가 등장할 것 같았고,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젊은이들의 블랙코미디처럼 엮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시작은 이렇다. 이 친구의 말, 그러니까 “걔는 전문성이 있잖아. 같은 회사원이래도 나같은 일반 회사원이랑은 다르지.” 에 등장하는 ‘걔’에게 전화를 걸었다. ‘걔’는 이렇게 말했다. 


  ‘네카라쿠배’ 개미  나는 여기 오래 못 있을 걸 알아. 전문성이 없단 말이야. 다들 ‘네카라쿠배 당토 직야’ 얘기하는데, 막상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이 다음에 자기들이 어딜 갈 수 있는지 엄청 고민해. (중략)


  그러면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친구를 또 지목했다. 이번에는 외국계 컨설턴트에 다니는 친구다. 전화를 받자마자 본인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로 지목된 데에 기함했다. 


  컨설턴트 개미  내가? 나 전혀 짱짱하지 않은데. 내가 종사하는 분야가 너무 좁아가지고 어쩔 수 없이 전문가가 되어버린 것뿐이야. 그리고 난 사실 컨설팅에 관심 없었어. (중략)


  컨설턴트 개미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다가 잘 풀리지 않자 그나마 연관이 있는 회사를 찾아 민간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인 탓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했고, 그러면서 지쳐가는 중이었다. 그는 공무원을 부러워했다. 자기계발이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그나마 덜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나는 또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공무원도 커리어 고민을 하는가?


  공무원 개미  공무원도 커리어고민 완전 많이 하지.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공무원도 처음에 일 시작하면 ‘이 길이 정말 맞나. 내가 생각했던 길이랑 너무 다르다’ 싶잖아.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그만 둔 사람들도 꽤 있어. (중략)


  사람들이 공무원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공무원 개미4는 매일같이 자정 가까이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 특성상 봉급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닌지라 이 정도로 몸을 갈아 넣어 일할 거면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는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할 걸 그랬다며 후회할 때도 있단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도 커리어 고민이 있느냐며.


  변호사 개미  커리어 고민 있지. 변호사 중에도 여러 전문분야가 있는데 무얼 할것인가. 계속 송무를 할 것인지, 법조 공무원을 할 건지, 사내 변호사를 할것인지, 국회 의원실에 들어가는 길도 있고... (중략)


  변호사 중에서도 여러 갈래가 있기에 커리어 고민을 멈출 수 없다는 말이었다. 더 연차가 쌓이기 전에 전문분야를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커리어 고민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으로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지목했다. 이번에도 곧장 전화를 걸었다. 


  초등교사 개미6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린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반대학교 졸업 후에 다시 수험생활을 거쳐 수능을 치루고 교대에 입학한 위인이다. 그리고 얼마 전 마침내 선생님으로 임용되어 출근하던 차였다. 


  장도수 PD  ‘내가 생각했을 때 이 사람은 커리어 고민을 끝내고 안정을 찾았을 것 같다’에 지목되셨습니다!

  초등교사 개미  아, 축하드려요! 완전히 틀리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하고 있습니다.

  장도수PD  근데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일, 평생 원하신 직업 아니었어요?

  초등교사 개미  ...사람이 늘 옳은 선택만 하고 살진 않잖아요? 교사 커뮤니티에 ‘힘들지만 이직이 불가능하므로 남아있는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중략)


  교사는 직업 특성상 이직이 불가능하다. 이직을 결심한대도 공교육에서 사교육으로 옮겨갈 수 있을 뿐 교육계를 완전히 뜰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초등교사 개미6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사의 정년보장은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을 꼬집었다. 


  초등교사 개미   여긴 정말 내가 범죄만 안 저지르면 돼. 심지어 범죄도 성범죄만 아니면 돼. 해고될 일이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던가, 성과를 내야 한다던가, 자격증을 따야 한던가 하는 압박을 하나도 받지 않아. 그냥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야. 물론 우리 일이 장기적으로 보면 가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 성과가 보이는 일이 아니라서 답답해. 

  장도수PD  시간을 돌려서 일반 대학교를 졸업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교대 갈 것 같아? 뭐 할 것 같아?

  초등교사 개미  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이과에 갈 거야. 공대에 가서 기술과 전문지식을 배울 거야.  


  새로운 국면이었다. 공대를 졸업하고 최근 수요가 많아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개발자 직군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IT대기업에 근무하는 개발자였다.


  대기업 개발자 개미 우리 고민은 이런 거야. 여기도 대기업이라 어쩔 수 없이 하던 것만 계속 하게 되거든? 그러면 능숙해지긴 하겠지만 고인물이 되잖아. 게다가 나 같은 경우는 쓰고 있는 기술이 범용적이지 않은 것도 큰 고민이야. 나는 특정한 기술만 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웹페이지나 앱처럼 범용적인 기술을 만드는 건 수요가 엄청 많아서 이직이 되게 쉽다고 하더라고. 


  마침 스타트업에서 앱을 개발하는, 그러니까 범용적인 기술을 하는 개발자가 생각나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앱 개발자 개미 범용성이 떨어져서 고민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고민이거든. 광범위하게 할 수 있는 건 많은데, 이미 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 여기서 어떻게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이라 난 오히려 특정한 기술의 전문가가 되고 싶어. 머신러닝이나 데이터를 다루는 개발자라면 상황이 좀 낫지 않을까?


   특정 기술을 사용하는 개발자는 좁은 범용성을 고민하고, 범용성 넓은 기술을 가진 개발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요즘 각광받는 기술이라는 머신러닝이나 데이터를 다루는 개발자에게도 전화를 해보았다. 


  데이터 개발자 개미 이건 계속 공부를 해야하는 직업이야. 지금은 젊으니 괜찮대도 나도 앞으로 나이가 들거고, 계속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하는데 점점 어렵지 않을까? 

  장도수 PD  계속 새로운 뭐가 나와?

  데이터 개발자 개미 그럼.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고, 새로운 언어가 나오고, 새로운 시스템이 나와. 업무 외적으로 계속 공부해야해. 그리고 새로운 것들은 아무래도 어린 애들이 잘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도수 PD  근데 그 어린애들도 언젠간 나이가 들거고, 또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야? 

  데이터 개발자 개미 그렇지. 기술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지. 그래서 정년보장이 최고라니까?


  정년이 보장된 교사가 다시 시간을 돌리면 공대에 진학해 전문기술을 배울 거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는데, 다시 정년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 쯤에 이르러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들 왜 이렇게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할까? 하긴 나부터가 그랬다. 다시 학생 때로 돌아가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때도 라디오PD가 되겠다고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탄탄한 커리어를 다져가는 친구들을 남모르게 부러워했고, 나는 지금 여기서 더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무얼해야하는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 인터뷰의 시작, “요즘 커리어 고민 없어?”라는 머리질문은 사실 내가 요즘 커리어 고민에 골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우후죽순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가, 막을 내리는 TV와 달리 라디오 프로그램은 한 번 시작되면 최소 몇 년, 길면 10년 15년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라디오 PD들은 자기 나이만큼 나이를 먹은 프로그램을 맡게 될 때도 있다. 장수 프로그램들을 맡을 때면 어린 시절 즐겨듣던 프로그램을 마침내 내가 연출하게 되었다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일면에는 조금 씁쓸한 맛이 남아있었다. 일을 하면서 ‘라디오=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명목으로 자꾸 뒤만 돌아보며 살게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모두 미래로 성큼성큼 나아갈 때, 나는 뒤돌아 과거만 바라보며 그 쪽으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몰랐던 일도 아니다. 나는 이미 라디오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임에도 그 아날로그 감성이 좋아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런 라디오가 좋아서 라디오PD가 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부러운 커리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미래지향적인 일을 하는 과학자를 꼽았을 것이다. 


  젊은 우리들의 꿈


  대기업 직원부터, 신흥강자로 떠오르는 IT업계 직원, 컨설턴트, 공무원, 변호사, 교사, 개발자...등 있는 지인 없는 지인을 탈탈 털어 인터뷰했다. 학생 시절 젊은 날을 공유했던 친구들이 이렇게 사회인이 되어(사회의 부속품이 되어)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감동이었다. 과거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다시 미래를 두고 이리 그려보고 저리 그려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비록 이야기의 대부분이 걱정이라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감상에 젖어들기도 했는데 대체로 10년 가까운 시간을 알고 지낸 친구들인지라 학창시절에 그들이 꾸던 꿈에 관하여 한번쯤 들어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핑계로 그들의 근황을 좇다보니, 그 때 말했던 꿈대로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 꿈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꿈을 실현했는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현재 그들의 삶을 설명하는 목소리에서 그들이 꿈을 이야기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국가고시를 포기한 것을 조금 후회한다고 말하는 친구의 말이 마음이 오래 남았다.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는 아니었던 탓에 그녀의 근황은 언제나 남들을 통해 건너 듣곤 했다. 이 친구가 국가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때 나는 한 학기 휴학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참이었다. 그가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한 번도 그녀가 합격하지 않을 것이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주 똑똑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년 뒤, 그가 결국 고시공부를 중단하고 민간 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그의 창창한 앞날을 축하하고 기대했을 따름이다. 


  그가 회사를 다니며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대학원까지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그는 앞을 향해서 성큼성큼 나아간다고 대단하게 여겼을 따름이다. 그가 고시를 그만둔 걸 후회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리석은 나는 늘 이렇다. 이렇게나 상상력이 부족하다. 내가 취업전선에서 매번 고배를 마시며, 이러저러한 한계를 마주하고, 이것이 나에게만 벌어지는 비극인 줄 알고 격동에 시달리던 시절, 친구들도 각자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나름의 격동을 버티고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 인터뷰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매년 진일보하는 대열에서 나만 도태되었다고 느끼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던 사람은 나 한 명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내가 가장 힘겨운 시간 속에 있다고 함부로 오만하지 말아야지.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의 치열한 전투 중이다. 


   그런 생각을 거듭하며 9회 최종편집을 마치고 한 번에 쭉 들었다. 그간 편집하는 단계에서는 친구들이 다른 직업군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이 현실과 교차되는 순간에 집중해왔다. 기획단계에서 웃음코드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지점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최종 편집본을 다시 한 번 들을 때에는 친구들이 이미 이루어낸 성과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음 단계를 걱정하는 내용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들은 '이전 단계를 이미 성취한 사람들' 이었다. 앞으로도 내 친구들은 저마다 본인이 그린 그림대로든 아니든 다음 단계를 밟아나갈 테고, 그 다음단계에선 또 이런저런 현실적인 고민들이 생길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딛고 선 계단 자체가 이미 그들이 이전 단계에서 치열하게 성취해낸 결과라는 점이 달리들리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국가고시를 포기한 컨설턴트 친구에 관하여 이전에는 그녀가 외시를 그만 둔 것을 후회하는 부분이 마음에 콕 박혔었다면, 이번에는 컨설팅 업계에서 능력있는 인재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 들리는 식이었다. 본인의 좁은 범용성을 고민하는 개발자는 그 전에 이미 특정 분야의 전문가였다. 범용성 있는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개발자는 이미 전문성을 배양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친구는 본인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었고, 글쓰기에 전문성이 생기지 않아 고민하는 후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의 직장이라는 '네카라쿠배'에 뿌리를 내린 성취자인 것이다. 


  <빅 리틀 라이프> 9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커리어고민’은 애초에 본인의 현실이 타인의 기대와 어떻게 다른가를 다루는 블랙코미디 같은 구성이었지만, 이 순서를 반대로 돌린다면 본인의 성취를 타인은 어떤 방식으로 리스펙하는지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번 회차는 그렇게 우습거나 가볍기만 한 내용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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