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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수 May 04. 2023

내가 이 두려움을 넘어선다면

우울의 원인을 찾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직업인으로 살아온 지 어느새 10년이 되어가는 친구들과 이야길 나누다보면, 직업을 불문하고 취업 전에 가졌던 환상과 일의 실체에는 꽤나 간극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변호사가 된 친구는 막상 재판보다 합의를 더 많이 한다고 쓴웃음을 짓고, 교사는 수업보다도 행정에 짓눌려 살아간다고 비명을 지른다. 나 역시 그렇다. 라디오PD라는 건 음악에 파묻혀 사는 직업인 줄로만 알았는데, ‘음악’은 방송 주행 중에 만나는 과속방지턱 정도에 불과하고, 주로는 ‘대화’에 파묻혀 살아가게 된다. DJ와 출연자의 대화, 혹은 DJ와 청취자 간의 대화 말이다. 

  PD는 그 대화들에 직접 목소리를 내진 않지만 꽤나 깊숙이 개입한다. 한 발짝 먼저 나아가, 흐름상 이 대답이 끝나면 바로 다음엔 어떤 질문이 더 흥미로울지 혹은 어떤 질문은 안 하는 게 나을 지를 실시간으로 판단해 대화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목표는 하나다. 대중감정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듣는 이들이 최대한 유쾌하고 즐거울 대화 만들기. 우리에게 ‘재밌어야 한다’는 직업적 정언명령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점점 의문이 생겼다. 이걸 진짜 대화라고 해도 되는가. ‘재밌어야 한다’는 목표에 따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낙오되어버린, 그러니까 유쾌하고 웃기지 않은 이야기들은 어디로 가야하느냐는 말이다. 물론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건네준다던가, 듣는 이가 웃을 수 있도록 농담을 던지는 식의 대화도 의미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런 식의 대화에 조금쯤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대화의 풍요 속에 살면서도 늘 대화가 고팠다. 

  언제였더라, 아마 입사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좋아하던 한 배우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낯가림 때문에 입사 이후 어떤 연예인이 와도 구태여 스튜디오를 찾아간 적이 없었는데, 그 때 처음 연예인을 보겠답시고 스튜디오로 찾아갔었다. 아니나 다를까 라디오도 야무지고 똑부러지게 해내는 모습에 경탄하며 빨간 온에어 불빛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 또래 배우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커리어 행보를 걸어가는 그녀가 이번 작품을 하며 느꼈던 점들에 대해 재잘재잘 털어놓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생방송 현장에 있던 모든 스태프가 그녀의 단단함에 단단히 매혹되었다. 그 순간, 돌연 이상한 슬픔이 나를 휘감았다. 왜? 왜지? 나 지금 왜 슬프지? 약간 우울한데? 너무나도 매혹적인 그녀를 마주한 뒤 한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우울의 골짜기로 낙하하는 기분이었다. 이 때의 감정은 슬픔, 우울함, 공허함 그리고 박탈감이 뒤섞인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 감정을 납득할 수가 없어 ‘내가 실은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건 아닐까?’라며 스스로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몇 년 뒤, 비슷한 감정을 또 느꼈다. <조정식의 펀펀투데이>를 연출하며 요즘 라이징하는 희극인을 초대했을 때다. 온에어 불이 꺼졌을 때 스몰 톡을 나누다 보니, 소비되는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진중한 사람이었고 의외로 독립영화에 일가견이 있었다. 기대보다 더 매력적인 모습에 나는 또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방송에선 방금 내가 매력을 느낀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으니, 그저 그녀의 콩트와 개그에 관한 대화만을 녹음했을 뿐이다. 사실 내가 궁금했던 건 그녀의 개그가 아니라 개그관 자체였고, 그녀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희극적인 면모가 아니라 그녀 본인을 기쁘게 하는 취미 같은 것들이었지만, 우리 방송에도 컨셉이라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녹음을 마치고 그녀를 배웅한 뒤, 이내 전과 같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또다시 슬픔, 우울함, 공허함, 박탈감이 뒤엉켰다. 이번에도 이유를 찾진 못했다. 다만 일상이 너무 바빠 깊이 고민하질 못했다. 그리고 옮겨간 <두시탈출 컬투쇼>에서는 그런 감정의 혼란을 굉장히 자주 느꼈다. 프로그램 규모가 굉장히 큰 만큼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누군가로 인해 감정의 혼란을 겪는 빈도수도 매우 높을 수밖에. 그 사람들이 날 불쾌하게 했느냐고? 천만에! 오히려 그들에게 너무나 매혹되고 있었다. 나도 스스로가 이해되질 않았다. 그저 ‘난 누군가한테 매력을 느끼면 슬퍼지는 이상한 병에 걸렸나보다’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날을 똑똑하게 기억한다) 그날도 <두시탈출 컬투쇼>를 찾아준 매력적인 게스트와 방송을 하며 어김없이 그에게 한껏 빠져들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것만으로는 너무 아쉽다. 방송 끝나고도 저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이런 얘기들 말고, 아직 묻고 싶은 것들과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방송을 연출하는 중간중간 알 수 없는 감정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던 이유는 PD로서 방송 컨셉에 맞게 구성해야 할 대화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대화의 간극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간의 우울, 슬픔, 공허함, 박탈감은 오히려 '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싶다'는 열망에서 가까웠다. 그게 불가하니 매번 그렇게 슬프고, 우울했던 것이다. 웃겨야 한다는 정언명령에서 벗어나질 못해 매번 공허했던 것이다. 매력적인 이들을 질투해서가 아니라 방송에서 유쾌하게만 웃고 떠드는 동안 진짜 대화를 나눌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은 박탈감이었던 것이다.

  블랙코미디 영화 <돈 룩 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제니퍼 로렌스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하지만 진행자는 이 재난을 가볍고 유쾌하게만 다루려한다. 심각성을 알리고 싶었던 제니퍼 로렌스는 흥분해서 소리지르다가 스튜디오를 나가버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녀보단 차분하게 대응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 또한 폭발하고 만다. 그 때 그는 이렇게 소리지른다. “제발 즐거운 척좀 그만해요! 미안한데 모든 대화를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있게 할 순 없는 거예요!” 

  이 장면에서 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그건 나 역시 PD로서 모든 대화를 재치있게 풀어가고, 출연자들이 청취자에게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는 방향으로만 끌고가려는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었다. 재치 같은 게 없어도 된다면, 방송 쪽 은어로다가 ‘시바이’ 치지 않아도 된다면, 매력을 어필하려고 혹은 호감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면, 출연자들이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궁금했다. 대화의 모양새도 궁금했고 대화의 내용도 궁금했다. 

  사실 ‘재미에 대한 강박’은 비단 일터에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적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압박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편하게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나 MZ세대 트랜드,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방법, 영양제와 운동 같은 건강걱정,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다고 가볍고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내 인생에 찾아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지구가 곧 멸망한다는 소식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충격과 고통을 선사하는 사건들은 어쩔 수 없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그런 일들을 대화주제로 꺼내지 않고 말주머니 안에 덩그러니 남겨두었을 뿐이다. 말 주머니에는 이런 말들이 남았다. 사실 나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있어, 아직도 엄마와의 관계가 고민이야, 세상을 떠난 후배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직도 매년 여름마다 괴로워, 가끔은 살아가는 일보다 죽음이 더 친밀하게 느껴져….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이미 일상을 숨가쁘게 살아가고있는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는 걸까봐 두려웠고, 내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자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차마 친구들에게 묻지 못한 질문도 남아있었다. 정작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내가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웠고, 자칫 질문만으로도 친구에게 상처나 민폐가 될까봐 두려웠다. 말주머니를 개봉하려면 이 수많은 두려움을 모두 넘어서야만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두려움 뒤에 숨어있으면서도 끝끝내 궁금했다. 우리가 이 두려움들을 넘어서서 대화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아니, 애초에 이런 두려움을 모조리 넘어서는 대화가 가능하긴 할까. 내가 말주머니를 열어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면 너희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친구들에게 네 일생을 뒤흔들었던 사건들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응답을 해줄까. 

  이 모든 용기와 열망을 담아 팟캐스트 <빅 리틀 라이프>를 시작했다. 나에게 <빅 리틀 라이프>는 일종의 해방구였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SBS 라디오센터에서 가장 바쁘다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도 팟캐스트를 위해 매일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회사에 홀로 남아 섭외를 하고, 원고를 쓰고, 편집을 하는데 단 한 순간도 피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국에 입사한 이래로 가장 활기차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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