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100권의 책을 읽었다 #01
만약 퇴사 후 100권의 책을 읽고 나타난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묻는다면, 나는 “일상생활이 편해졌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xx팀의 oo입니다… 금일… 이슈… 해당 내용… 확인 부탁드립니다…”
회사에 다닐 때 이메일을 읽던 내 모습이다.
나는 처음 보는 용어와 어려운 내용이 많았던 업무 메일을 이해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더듬거리면서 읽어야 했다. 그것도 부족해 여러 번 읽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렵지 않은 간단한 이메일조차 입으로 작은 소리를 내서 읽지 않으면 내용이 눈과 귀에 달라붙지 않았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동료들에게 종종 물어볼 때도 있었는데, 동료들도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는 다 같이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껏 그 지시 사항을 진행했다.
또한 나는 업무 내용에 대해서 글을 쓸 때도 어려워했다. 한 예로, 회의가 끝나면 회의 내용을 정리하여 전달할 때가 있었는데,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회의록을 정리할 때는 최대한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압축할만한 단어가 떠오르지도 않고, 매끄러운 문장 배열도 구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종종 회의 정리가 길어질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런 상황을 ‘아직 경험이 없어서 서툴고 힘들 수밖에 없지’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어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얼마 전 EBS에서 방영한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다큐가 잠깐 이슈가 됐다.
현대인의 ‘문해력’에 대한 내용을 담은 다큐였는데, 거기에 눈길이 가는 장면이 있었다. 문해력이 직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는 장면이었는데, 성인들도 문해력이 많이 떨어져 직장 생활에서 소통의 문제를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관심이 가서 따로 직장생활과 문해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알아보니, 직장 내 소통에 있어서 70%는 문서로 이루어지는데, 문해력이 떨어지면 소통이 어려워져 직장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득 회사에서 이메일을 더듬더듬 읽어 내리고, 회의록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어떤 이슈에 대해 전사적으로 메일이 와도, 회의를 해도, 각자가 받아들인 내용은 천차만별이었다. 각자의 문해력 부족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소통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 나는 경험과 연차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문해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글자는 읽을 수 있었지만,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능력이 부족하니, 업무 효율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문해력은 퇴사 후에 독서를 하면서 생겼다.
만약 퇴사 후 100권의 책을 읽고 나타난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묻는다면, 나는 “일상생활이 편해졌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100권의 책 읽기’가 인생의 큰 도전이었다. 그전까지는 일 년에 한 권은 고사하고, 3년에 1권 정도 읽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잡고 처음 책을 읽을 때는 글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세가 딱딱해지고 왠지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회사 이메일을 읽을 때처럼 읽던 부분을 다시 읽고, 작은 소리로 낭송을 하며 읽기도 했다. 그렇게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글이 눈에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전까지는 집중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 글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언제부턴가 눈에 스캐너가 달린 것처럼 글자들이 쏙쏙 들어왔다. 그때 처음으로 ‘글이 눈에 들어온다’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문해력이 올라갔는지 궁금해서,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진에서 제공한 성인 문해력 테스트를 쳐봤다. 시간이 조금 오버됐지만, 전체에서 1개 정도 틀렸다. 대단한 시험을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나도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구나’하고 자신감이 붙은 순간이었다.
글 읽는 데 자신감이 붙자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글만 보면 자세가 뻣뻣해지고 눈에 힘을 주며 과도하게 긴장했던 과거 달리, 이제 긴 글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일상생활까지 편하게 해 줬다. 이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 복잡한 제품 설명란을 전과 달리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별다른 홍보 없이 글자만 써져 있는 제품들의 세일도 챙길 수 있었다. 또 친구나 가족끼리 얘기를 할 때, 전에는 머릿속에서 ‘이건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맞나?’ 항상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내용이 잘 들어왔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큰 변화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전 MBC 드라마 피디이자, 현 북 유튜버 꼬꼬독(김민식)은 자신 인생이 운이 좋았다고 한다. 남들은 기본 몇 년을 공부해서 붙는 언론고시를 한 번에 붙고, 방송국 입사 후에도 만들었던 시트콤이 대박이 나면서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고 했다.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보니 그 운과 자연스러움은 대학 시절의 ‘독서’ 때문이었다고 꼬꼬독은 회상했다. 꼬꼬독은 입학한 대학교의 전공이 정말 자신과 맞지 않아, 전공을 포기하고 그냥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2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사는 것 같다고 꼬꼬독은 말했다.
다독은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는 않는 것 같다. 대신 일상생활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변화시켜, 큰 기회를 불러오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