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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Sep 13. 2023

살아있는 모든 자들을 위한 위로 <코코>


살아서 갖지 못 한 행복을 죽은 뒤 얻게 해주겠다는 교조주의적 가르침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배가 침몰해 무고한 아이들이 생을 잃을 때. 죽어 마땅한 학살자가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다닐 때. 나는 신은 이미 죽었거나, 원래 없었을 거라 확신한다. 신이 없다는 증거는 나이를 먹을 수록 차곡차곡 쌓여 간다.

하지만 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나는 때때로 어리석은 기도를 한다. 떠난 아이들이 천국에서는 더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 학살자는 영원히 구원 받지 못 할 지옥으로 데려가 달라고 신에게 빌기도 했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 한 정의나 공평함 따위를 신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무신론자의 비이성적인 기도다.  


나는 얼마 전,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한 반려동물을 잃었다. 링고는 요양병동에 누워 죽음을 맞이하는 여느 노인과 다름 없이 늙어갔다. 눈에 띄게 살이 빠졌으며 활동력을 잃었다. 집에서 직접 주사를 맞혀야 했는데 나중엔 눈만 마주쳐도 느린 걸음으로 도망쳤다. 이대로라면 링고에게 내 마지막 모습이 인간 주삿바늘로 남게 될 지도 몰랐다. 우리 가족은 치료를 중단하자는 데 합의했다.


빠는 박경리 선생을 예로 들었다. 폐암 판정을 받았지만 박 선생은 죽는 날까지 담배를 피우며 삶과 글을 이어 갔다. 링고가 비록 소설가는 아니더라도 그런 마지막도 꽤 좋을 것 같았다. 아빠의 제안에 우린 모두 동의했다. 링고를 아프게 한 바이러스가 무엇이든,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참외를 사서 우린 과육을 먹고 씨 부분은 링고가 먹었다. 링고는 참외 씨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구운 오징어냄새를 맡아보라고 코에 가져다 대기도 했다. 링고는 분명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안락사의 위기에도 우린 함께 고통과 행복을 나눴다.


이승과 저승 사이, 어떤 공간이 있으리라 믿고 싶은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 사이 연옥이 그렇고, 7번 재판 받아야 비로소 사후 세계가 결정되는 어느 영화가 그렇. 집사들은 내 고양이가 죽어서 떠날 미지의 그 곳을 창조해 냈고, 그곳을 '무지개 다리'라고 이름 붙였다. 옷장 안에서 가쁜 숨을 쉬다 조용히 떠난 링고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고양이다운 캣워크를 했을 거라 믿는다.  




영화 <코코>는 바로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다채로운 색으로 치장한 그 곳엔 뼈만 남은 영혼들이 모여 산다. 해골인 프리다 칼로가 그림을 그리고 코첼라 같은 음악 페스티벌에서 뼈다귀들이 춤을 춘다. 그들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그 영혼이 마침내 죽게 되는 순간은, 이승에 남은 친구들이 그를 더이상 추억하지 않을 때다. 이건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위로이자, 숙제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그 기억을 공유할 때 영생할 수 있다는 종교적인 믿음 말이다.

<코코>가 내게 쥐어준 숙제는 꽤나 영험했다. 링고가 보고 싶을 땐 어김 없이 <코코>를 본다. 그리고 링고를 생각한다. 다채로운 세계 그 곳 어딘가를 날아다니며 나보다 더 좋은 친구를 만났을 수도 있겠구나. (코코에선 동물이 날아다닌다) 거기서 오래 행복하라고 내가 더 추억하고 기억해야지. 그럼 어느새 나도 위로 받는 기분이 든다.

사실 나도 링고가 어디 있는 지 모르겠다. 꿈에도 한 번 나오지 않았다. 영원하고도 고요한 잠에 들 지, 구천을 떠도는 영혼으로 남을 지, 그저 단백질 덩어리가 되어 천천히 썩을 지. 사후 세계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종교라는 걸 만들어 낸 인간의 본능처럼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링고야, 덕분에 행복했어. 좋은 곳에 먼저 가 있으렴. 부디 우리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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