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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망고 Sep 17. 2022

하필이면 매생이굴국밥

그날 밤 수술방에서

여객기가 바다에 추락했고 기적적으로 생존한 몇몇 사람들이 무인도에 도착했다. 어떤 사람이 알 수 없는 증상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떠내려온 짐 속에서 의학 교과서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책을 뒤지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의학 교과서는 말 그대로 교과서처럼 쓰여 있다. 교과서만 보고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고래 잡을 때 쓰는 성긴 그물로 새우를 잡는 것과 비슷하다. 큰 원칙이 쓰여있고 그 원칙들의 근거가 되었던 실험 결과들, 과거의 경험들이 나와 있다. 앞에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환자를 치료하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교과서의 글귀가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깨달아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과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닌 것이 교과서 없이 환자를 보면 정말 산으로 가는 수가 있다. 그래서 의사에게는 경험이 중요하고 그 경험을 정리하고 뒷받침할 지식이 중요하고 지식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경험이 중요하다.


전공의 때 유독 고생을 하는 동료를 본다. 그 친구가 당직을 설 때 꼭 환자가 안 좋아지고 응급수술을 끝내고 나오면 응급실에 급한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들이 줄을 선다. 그 친구가 담당이 되면 환자가 이상한 요구를 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부서에 전화를 하게 되고 입원하는 환자 수가 많아진다. 이런 친구를 어떤 병원에서는 환자를 탄다고 해서 ‘환타’라고 부르기도 하고 어떤 병원에서는 ‘내공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님들도 이 친구와 당직을 서게 될 경우 긴장을 하고 같은 파트의 아래 연차로 들어오게 되면 한숨을 쉬기도 한다. 미신 같은 징크스인데 이상하게 그 친구는 어느 파트를 가도 꼭 그렇다. 환타이고 내공이 똥내공이라고 놀리지만 또 좋은 의사가 될 것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가 우리 중에서 제일 뛰어난 의사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부족한 지방 병원에서는 전공의의 권한이 상당히 크다. 큰 병원에서는 위에 펠로우 선생님도 있고 교수님도 있어 기댈 구석이 많다지만 이런 작은 병원에서는 전공의가 진단을 직접 해야 하고 치료법도 어느 정도 정해야 한다. 내가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으로 환자 앞에 서면 참 무섭다. 내 입에서 나올 지시를 기다리는 간호사 선생님, 인턴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판단을 내리는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힌다. 


나의 내공은 준수한 편이었지만 그날 밤은 내공이 통하지 않는 날이었나 보다. 우리끼리는 배가 터졌다고 표현을 하는데 사실적인 표현은 아니자만 어감이 참 적절한 것 같다.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장에 구멍이 난 것인데 그것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과 스트레스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터졌다’가 적절하다. 


그날에는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의 환자가 왔다. 자려고 누웠다가 콜을 받고 일어나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터벅터벅 응급실로 내려가는 길에 전달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할 일 목록을 머릿속으로 점검해본다. 컴퓨터에 앉아서 차트와 씨티 사진을 돌려가며 본다. 장이 부풀어서 배를 가득 채웠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구멍이 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주의해야 한다. 수술장에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장 벽에 조영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이미 장이 썩었다는 말이고 이런 경우 수술이 급한 경우가 많다. 또한 장이 비정상적으로 부푼 것은 어딘가 막혔다는 것인데 그 부위를 찾아야 한다. 씨티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결국 포기한다.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은 환자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신속하게 판단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면 수술방으로 지체 없이 올리는 것이다. 간호사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가보니 까무잡잡한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누워 있고 혈압계가 깜빡거린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수액이며 승압제며 달아놨고 보호자는 망연히 할머니 손만 잡고 앉아 있다. 환자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배를 눌러보니 수술 자국이 있고 눌러보니 딱딱하다. 역시나 싶다. 


응급실에 내려오면서 그려두었던 시나리오를 실행한다. 인턴이를 시켜서 중환자실 배드 현황을 파악하라고 하고 마취과에 연락해서 수술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그리고 환자 상태를 간단히 정리해서 교수님께 보고 드린다. 환자 이름을 말씀드리니 교수님은 별로 듣지도 않으시고 ‘수술해야지’ 하신다. 주무시기 전에 응급실에 수술할 환자가 있는지 보다가 이 환자가 레이더에 걸린 것이다. 교수님의 수술하자는 말은 내 편한 밤을 절단 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지만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 말 덕분에 미련이 남던 잠을 포기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내려놓으면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일이 편한 것은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많이 해봤지만 언제나 새롭게 느껴지는 일련의 절차를 진행시킨다. 수술방을 열기 위해 마취과와 투닥투닥거리고, 중환자실 병상을 차지하기 위해 간호사 선생님들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고 인턴이와 간호사 선생님들을 쪼아댄 끝에 드디어 환자를 수술방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


환자가 침대에 눕고 마취가 끝날 동안 수술방 안에 있는 컴퓨터로 씨티 사진을 계속 본다. 도대체가 꼬인 부분은 어디인지, 썩은 장의 길이는 어느 정도인지, 거기 말고 다른 데는 문제가 없는지, 장은 얼마나 잘라야 할지, 잘라내고 봉합은 할 수 있을지, 그만큼 잘라내고 나면 환자는 살 수 있는지, 장루를 내야 할지 말지… 등등 교과서에서는 ‘이런 병이면 장을 잘라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이라고 표현한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고민을 한다. 마취가 끝나고 수술 준비도 끝났다. 교수님도 일찍 들어오셨다. 그리고 순회 간호사 선생님이 갖은 원성을 뒤로하고 치사하게 수술방 문을 닫는다. 


문이 닫힌 이유는 이 수술의 가장 큰 적이 냄새이기 때문이다. 배를 가르기 전에 숨을 크게 들여 쉰다. 이제 두세 시간 동안 맑은 공기는 마실 수 없다. 지혈을 하면서 배를 열었고 굵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하수도 냄새가 나는 액체들을 헤치고 용솟음친다. 온몸을 이용해서 이 짐승이 떨어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그 와중에 수술복이 더럽게 젖는다. 장을 꺼내고 꺼내다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였고 결국 썩은 부위에 구멍을 뚫고 가스와 적체된 장 내용물을 쏟아낸다. 변이 적체돼서 장이 터진 경우나 엉덩이가 썩어서 나는 냄새보다는 덜하지만 이 냄새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다. 수술장에 들어서기 전 노련하게 장갑은 두 겹 꼈지만 코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장 내용물을 거의 다 비웠고 구렁이는 온순해졌다. 환자의 혈압이 불안정해서 수술을 빨리 끝내야 했는데 시야를 확보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손으로 장을 훑으며 남은 것들을 비워내려고 애쓰시던 교수님이 ‘이거 꼭 뭐 같다.’라고 하신다. 시선이 트레이로 받고 있던 초록색의 점성이 있는 흐믈흐믈한 액체에 머물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매생이 굴국밥’. 수술간호사 선생님이 들으셨는지 ‘풉’하고 실소를 하신다. 시야가 확보되자 수술은 순조로웠다. 막힌 부분은 씨티로 어렴풋이 짐작했던 부분과 일치했고 잘라냈다. 생각보다 잘라야 했던 장의 길이가 길었고 배 안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러면 수술하고 나서도 힘들고 퇴원하고 나서도 힘들다. 배를 씻어내고 수술을 종료했다. 교수님은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러 가셨고 나는 인턴이와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다. 구렁이 몸에 들어있던 초록색 국물이 썩션 통에 가두어져 있다. 


당직실로 돌아가서 샤워를 한다. 머리를 말리고서 차트를 보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데 코에서 아직도 썩은내가 나는 것 같다. 이 환자가 어땠는지 돌아보고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들은 교과서를 뒤져본다. 그 문단이 그런 의미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교수님이 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도 알게 된다. 수술 끝나고 잠자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훌륭한 전공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어차피 이날 밤 잠은 다 잤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 혈압이 떨어진다고 연락이 왔고 당직실을 나선다. 오늘 밤은 경험을 쌓는 날이다. 


곧 굴 철이다. 날이 밝으면 함께 고생한 인턴이랑 뜨뜻하게 굴국밥이나 한 그릇 먹어야겠다. 매생이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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