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방에 울려퍼지는 한마디 '죄송합니다'
‘그대가 반역을 꾀함은 무엇 때문이냐?’ 궁예의 물음이 왕건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관심법으로 너의 마음을 꿰뚫어 보니 왕건이 반역을 꾀했다는 것이다. 망했다 싶었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있지도 않은 반역을 꾀했다고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일 없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관심법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최응이라는 사람이 붓을 떨어뜨리고는 줍는 척을 하면서 왕건에게 구원의 말을 속삭였다. 그리고 왕건이 떨리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궁예는 웃더니 왕건을 놓아주고 오히려 상을 주었다고 한다.
오색 찬란한 반찬이며 윤기가 흐르는 쌀밥이 예술작품이라도 되는 듯이 자태를 뽐내며 고풍스러운 도자기 그릇에 정돈되어 있다. 식탁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은 나이가 지긋한 한옥 방이 풍기는 예스러운 분위기이고 열려있는 창 밖으로 드리워진 푸른 버드나무의 싱그러움이다. 요리의 내음을 만끽하며 침샘을 애써 진정시키며 기다리고 있다. 긴 기다림 끝에 윗사람이 왔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더니 심술궂은 표정으로 대뜸 두 팔을 휘둘러 음식과 그릇을 바닥으로 쓸어버린다. ‘와장창창’ 음식은 바닥에 널브러지고 그릇은 산산조각 난다. 국물이 사방에 튀고 정갈함을 뽐내던 붉은 김치의 국물 한 줄기가 바닥을 긁으며 가로질러 신발을 적신다. 심술쟁이는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홀연히 자리를 떴다.
수업이 마치고 교실이 어수선하다. 선생님이 손수 빗자루와 쓰레기 받이를 들고 지휘를 하시고 아이들은 각자 청소용품 하나씩 들고 정성스레 맡은 구역의 먼지와 쓰레기를 정리한다. 먼지가 쌓여서 뿌옇던 바닥이 원래의 광택을 되찾고 흐렸던 창문은 투명해져서 햇빛이 밝게 들어온다. 어서 집에 가고 싶지만 힘을 합쳐 청소를 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른손에 분무기를 왼손에 접은 걸레를 들고 한 손으로 뿌리고 한 손으로 쓸어낸다. 걸레에 쌓이는 검은 먼지가 많을수록 유리는 빛난다. 창의 바깥쪽 구석을 닦으려고 손을 뻗어 애써보고 한쪽 손으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난간을 부여잡는다. 깨끗해진 유리 너머로 교실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구석의 먼지를 훔쳤을 찰나에 유리 너머로 험상궂은 사람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와장창’ 세게 휘두름과 동시에 야구방망이가 유리창에 박히고 그 파장으로 산산조각 난 조각들이 허공을 가른다. 뻥 뚫린 창으로 교실 안이 더 맑게 보이지만 방망이를 두른 사람의 무심한 표정이 나를 압도한다.
바다가 펼쳐지고 해안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해안을 핥는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친구들은 맥주잔을 기울이며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있지만 나는 게스트하우스 옆에 묶여 있는 어두운 갈색 말에 더 관심이 많다. 담장 너머로 고개를 뻗어 풀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말에게 뜯은 풀을 길게 잡고 건네준다. 받아먹는 말의 입질과 함께 줄기가 짧아지며 손이 당겨지는 느낌이 재미가 있다. 용기를 내서 팔을 뻗어 흰색 다이아몬드 무늬가 있는 이마에 살포시 손을 얹으니 말의 온기를 느껴진다. ‘탕’. 총소리가 울리고 말이 크게 울부짖고는 힘없이 쓰러진다. 튀어 오른 살점에서 쏟아져 나온 생명의 상징이 끈적하게 주변을 뒤덮는다. 진득한 액체의 비린내에 숨이 막힌다. 엽총을 둘러맨 사람이 달려들어 이미 쓰러진 말 위에 앉더니 손에 들려 있는 단도로 난도질을 시작한다. 고깃덩어리가 되어 가는 커다란 몸뚱이 앞에서 발이 땅에 박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멍하니 붉게 물들어 시들어버린 풀밭으로 빠져들어간다.
정규 일과가 끝나면 선배들과 만나서 환자들을 하나씩 살피는 작업을 한다. 이것을 '테이블 미팅'이라고 불렀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 더 잘해야 했던 부분은 없는지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환자를 찾아낸다. 외과는 저년차가 병동에서 환자를 보고 고년차는 수술방에 들어가는데 수술이 끝나면 고년차가 나와서 저년차를 앉혀두고 차트를 함께 본다. 혼이 나기도 하고 푸사리도 듣고 환자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고 해결책을 몰랐던 문제의 답을 얻기도 한다. 테이블 미팅은 배움의 장이고 천둥벌거숭이 저년차 전공의가 점점 사람의 형체를 갖추게 되는 전공의 교육에 있어서 필수적인 시간이다. 그래서 옆에 앉은 고년차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전공의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선배의 말마따나 저년차를 ‘커피 같은 전공의가 아니라 티오피 같은 전공의’로 만들어주는 고년차가 있는가 하면 환자에는 관심이 있지만 저년차의 배움에는 관심이 없어 환자만 보고 떠나는 고년차를 만나기도 하고 둘다에 관심이 없어서 혼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저년차도 있다.
최악은 가장 마지막 케이스의 고년차이겠지만 첫번째 케이스처럼 환자를 잘 보고 문제도 잘 해결하고 전공의 교육에도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내뱉는 말이 그리고 그 태도가 가슴을 후벼 파는 그런 분을 만나면 숨이 막힌다. 워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계에 과부하가 걸리면 자동으로 셧다운 되는 것처럼 기억이 멈추었던 것 같다. ‘어디서 배운 초식입니까?’ 대강 이렇게 다그치고 추궁하는데 권위주의에 가득 차서 아래를 찍어내리고 자신은 환자를 잘 본다는 오만과 닮은 자부심으로 목을 쪼으는 아무튼 굉장히 불쾌하고 쓰라린 그런 말들의 연속이다. 편한 과였음에도 동기가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인턴들을 숫하게 울게 해서 아래 년차들끼리 나가서 술잔이 깨어져라 부여잡고 부딪히며 서로를 위로하고 불만과 상처와 아픔을 쏟아내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환자는 잘 보니 그 고년차가 있으면 문제없이 파트가 잘 돌아갔다.
그날이 왔다. 병동일이 많아서 인턴이 수술방에 늦게 내려온 날이었다. 남자 인턴 여자 인턴 한 명이었는데 곧 과를 지원하는 시즌이라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실제로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였기에 모두가 좋아하고 칭찬하는 인턴이어서 외과에 오라고 설득하곤 하였다. 하지만 다른 과에 관심이 깊었던 친구들이라 정중히 사양을 하곤 했는데 두 인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그 고년차는 빠져있었나 보다. 하루는 작은 실수가 있었는데 인턴 선생님한테 ‘네가 관심 있는 과에 내 친구가 있는데 너 절대 뽑지 말라고 할 거다’고 말을 하며 온갖 폭언으로 혼을 냈다더라.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다나, 고분고분하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더 나…그런 이유였다고 하고 한다. 그리고 그날 늦게 들어간 수술방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것과 같은 시간을 보낸 뒤에 수술 다 끝나고 ‘나 좀 보자’고 했다고 한다. 긴장과 불안에 휩싸인 인턴 선생님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다 잡고 있었다. 위로라도 해주려고 다가가니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한숨 쉬면서 물어보는데 그냥 무조건 ‘죄송합니다.’ 하라고 했다. 궁예의 관심법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간 사람들 속에서 왕건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어이가 없고 억울하고 피 토하는 심정이라도 그를 인정하는 의미로 숙이는 것이었다고.
고년차가 결혼을 하였을 때 축의금을 정갈한 봉투에 넣어서 들고 간 것을 보면 껄끄러운 감정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부드러운 방법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지식적인 부분이나 환자의 병세를 읽고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 의사답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분도 본인의 행동을 알고는 있었는지 의외로 전공의 과정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졸국식 자리에서 소감을 말할 때 자신 때문에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냉소로 외면했지만 말이다.
그 고년차가 옛날 통닭을 많이 좋아했다. 살이 별로 없는 작은 닭으로 튀겼지만 튀김옷이 아주 얇은 담백한 살점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같은 파트를 돌 때 아래년차끼리 절대 치킨은 시켜먹지 않았다. 그날에도 족발을 시켜 앞에 두고 인턴 선생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인턴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다행히 울고 있지는 않다. ‘죄송합니다.’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고맙다고 전해주는 말에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일 년이 더 가고 이제 고년차가 되었다. 떨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인계 자료를 보면서 손동작을 시뮬레이션하고 환자의 CT 사진을 토대로 수술을 구상하고 교과서와 동영상으로 수술 과정을 익혔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술방에 들어와서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갓 서보는 전공의가 성에 차겠는가? 연이어 교수님의 호통이 들려온다. 그때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죄송합니다.’는 말 밖에 못하냐고 해도 ‘죄송합니다.’ 한다. 왜냐하면 정말 죄송하니까. 능력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해서 죄송하니까 죄송하다고 한다. 그렇게 ‘죄송합니다.’의 벽에 숨더니 어느새 ‘죄송합니다.’는 우회로가 되었다. 시간이 가면서 ‘죄송합니다.’를 하면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서 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죄송합니다.’라는 회로가 작동해서 반대쪽 귀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마음에 동요함이 없다. 뻔뻔함이 늘면서 실력도 늘었는지 교수님의 고함소리의 빈도도 잦아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병동으로 올라왔다. 옆에 앉은 저년차가 환자를 봐 둔 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동통한 치킨의 퍽퍽한 가슴살을 찢어낸 뒤 소금에 찍어 맥주 한잔에 곁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