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x Dec 12. 2020

프랑스 파리로 도망친 여자

프랑스 파리의 저녁



여름이 끝날 즈음이었다.

매일 밤 울며불며 이대로는 죽겠어서 어디든 다 내던지고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나 이대로는 안 되겠어.. 파리에 친구가 살아. 잠시 다녀올게."

"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애들은??"


"엄마가 봐줄 거야.. 나도 죄송하지만 이제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그래..”

".... 니 맘대로 해!"


주말부부가 길어지고 또 그렇게 별거로 이어진 결혼생활에 이혼만이 남았다.

이미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린 부부 사이였다.

여자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 생각들로 가득했고,

징징거리는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대하는 자신이 점점 미워졌다.

결혼 8년 차에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아니 사실 도망이었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여자는 단출한 짐을 가지고 택시에 올랐다.

버스도 지하철도 모두 귀찮았다.

창밖을 내다보는데 마음의 온갖 죄책감들이 여자를 조여왔다.

아이들 걱정.. 나이 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 차갑고 냉정하게 쳐다보며 말하던 남편의 눈초리..

시부모님의 걱정들...

언제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러지 못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고 탓하며

그저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ça va??"


괜찮냐는 택시기사의 물음에도 그저 울기만 할 뿐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건네준 쪽지의 주소 앞에서,

기사는 동양의 작은 여자가 계속 우는 게 맘이 쓰였는지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했지만 여자는 손사례를 치며 인사를 했다.

여자의 친구는 일이 있어 마중을 나올 수 없었고 대신 친절히 집에 들어가는 법을 이미 알려준 터였다.


달그락달그락..


파리의 오래되고 멋스러운 커다란 문을 보니 또 한 번 떠나온 것을 실감한 여자는 있는 힘껏 문을 열었다.

묵직한 문이 닫히자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얼른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르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고,

무겁지도 않은 캐리어를 들고 단숨에 계단을 올라 친구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용하고 모던한 친구의 파리 집.

아직 싱글인 친구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예쁜 집이었다.

사실 여자는 기꺼이 집을 내어준 파리 친구와 친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럴 기회가 없었다.

몇 주 전 여자는 친구가 파리 주재원으로 간 사실을 SNS를 통해 보았고 무작정 국제전화를 걸었다.

 

"현정아... 잘 지내지? 정말 미안한데..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 좀 받아 줄 수 있어?"


다짜고짜 전화해서 여자가 친구에게 한 말이었다.

당황스러웠을 것이 분명했지만 친구는 그런 여자를 기꺼이 맞아 주었다.

 

결혼한 여자의 삶은 온전히 가족의 것이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나를 죽이고 살면서

잃어버린 여자 자신의 삶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슬픔과 분노,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참을 멍하니..

프랑스 파리의 친구 집 거실에 기대앉아 울고 또 울 뿐이었다.


'내가 이제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좌절이라는 나락에서 망연자실한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도뿐이었다.


"주님, 제발.. 나를 살려주세요.

신이시여.. 그동안 수없는 시간을 홀로 울부짖었잖아요.. 제발 이제 더는 못 견딜 것 같아요.

나를 제발 버리지 마세요..."



 




작가의 이전글 감정 선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