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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 Dec 13. 2020

마음의 감옥

늦은 밤 파리의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여자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이제 아이들이 몇 살인 거지?”

“응 큰애가 8살, 작은애가 6살.”


“정말 대단하다~ 나는 언제 결혼하고 애 낳지?

이제 여행도 올만큼 많이 편해진 거니까 네가 큰일 한 거야”


“큰일은 뭘~ 너처럼 능력 있고 멋있게 사는 게 더 대단한 거지. 그나저나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을 텐데 받아줘서 고마워...”


여자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리고는 끝내 입을 닫고 보통 여자들의 대화를 이어갔다. 모처럼 만난 옛 친구와의 수다가 무척이나 좋았고, 어느새 웃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린 여자는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래 갑자기?”

“내가 아이들을 두고 혼자 이렇게 떠나온 게 맞나 싶어서.. 이렇게 웃고 있는 게 좋긴 한데... 맘이 안 좋아.”


엄마라는 이유로 가슴에 돌덩이를 몇 개 올린 것 마냥 답답함이 밀려왔다.


“엄마가 잘 봐주실 거야~ 이왕 이렇게 왔으니까 좋은 시간 보내고 마음 좀 풀어봐!”


친구는 진심으로 여자의 마음을 다독이며 배려해주었다.


“프랑스에서 일정은 어떻게 짰어? 내가 맛있는 로컬 음식점들은 알려줄게~ 나랑 같이 근사한 미슐랭 레스토랑도 가보자”


“일정... 못 세웠어. 그냥 무작정 떠나와서... 내일은 좀 동네 산책부터 하지 뭐.”


“파리 근교 여행도 가야지~ 몽생미셸이랑 투어 프로그램도 찾아봐”


“응 고마워 정말”


그렇게 여자는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첫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알만한 IT기업에 근무하는 친구의 아침은 바쁘지 않았다. 어느 기사에서 프랑스가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 중 하나라고 본 적 있었는데, 그 때문이겠지 싶었다.


무릎 나온 잠옷 바지에 목이 다 늘어난 얇은 긴팔티셔츠를 입은 여자와는 참으로 다른 모습.


여자는 그동안의 시간을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가족에게 썼고, 친구는 온전히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의 성에서 우아하게 살고 있었다.


세련된 옷들과 예쁜 구두,

구경도 못한 화장품과 좋은 냄새.


‘네가 바로 파리의 여인이구나-‘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기 길 건너에 가면 정말 맛있는 빵집이 있어~ 바게트 대회에서 수상한 빵집인데 꼭 먹어봐야 해!”


식당 몇 곳을 짚어주고 친구는 좋은 향기를 남기고 멋있게 출근을 했다.


조용한 파리의 친구 집 큰 창으로 따듯한 햇볕이 쏟아졌다.

탁.. 탁..

조금 열어둔 창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고,

걸어둔 빨래가 부딪혔고, 화음이라도 맞추듯,

작은 새들이 예쁜 소리를 만들어주어 참 평화로웠다.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소리 대신 고요함이라니..

생경한 광경이 어색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여자는 이기적인 본인의 마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봉쥬흐”


친구가 가르쳐준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고 여자는 순간 따듯한 커피와 빵이 절실해졌다.


“Un pain, s'il vous plaît.”

빵 하나 주세요.


그래도 파리에 왔다고 단어를 모두 갖다 붙여 주문을 했다. 그랬더니 빵집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불어로 이야기를 한다.

‘아뿔싸!’

결국 막혀버린 소통에, 얼마를 내야 할지 몰라 동전을 한 손에 가득 내밀어 펼쳐 보였다.

아주머니는 말없이 웃으며 동전을 챙겼다.


종이백에 담긴 빵과 커피를 들고 터덜터덜 바로 옆 공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빵과 커피가 참 맛있다 생각했다.

그때 멀리서 두 아이가 아빠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아마도 등교를 시키는 모양이었다.


‘ 프랑스 아빠들은 참 자상하구나..’

그리고는 바로 우리 집 아빠는.. 하며 여자도 모르게 비교하고 있었다.


여자가 밥을 차릴 수 없을 때면, 주말에 아이들 혼자 먹이기 어려워 기어코 시댁으로 향하던 남편. 여자의 머릿속에서는 또다시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이 얽히고설켜 전쟁을 치른다.


‘지겨워..’


다시 마음의 상처들이 구석구석을 들 쑤시며 여자를 괴롭혔다. 이렇게 빵과 커피가 맛있는데.. 너무 슬펐다.

다시 터져 나온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보.. 같이 뭐라도 해보자. 부부클리닉이든 교회 가서 설교를 듣든 서로 노력해보자.”

“싫어”


싫다는 남편의 단호한 대답을 회상하며 다시 너무도 서운한 여자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생각하며 다 먹지도 못한 빵과 커피를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는 눈앞에 놓인 길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일주일도 훨씬 넘은 어느 날,

그렇게 길을 걷던 어느 오후, 쓰라림에 걸음을 멈춘 여자는 파리의 센강 강변으로 내려가 아무 돌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었다. 어느새 두 발에 물집이 잡혀 모두 까져 있었다.


‘발이 이렇게 되도록 못 느낀 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센강과 맑고 파란 하늘, 그리고 연인들이 보였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여자가 가장 불행하다 생각했다.

여자만 빼고 모두가 행복한 듯 보였다.


다시 한번 쏟아지는 서러움과 눈물을 마냥 또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여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두발의 자유가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자신만의 독방에 갇혀 있는 죄수처럼 마음이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여자였다.


살갗이 까져 아팠으나

여자의 마음이 더 춥고, 아프고 외로웠으며 참담했다.


‘돌아가서 이혼을 하면 두 아이들을 어쩌지? 부모님의 실망은 어떻고.. 아이들을 키우는 건.. 일은 어쩌지??’


현실의 고민과 걱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여자를 몰아붙였다. 


그저 죽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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