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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정 Aug 20. 2020

계란프라이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

하루 온종일 집에 있다 보면 소소한 것들에도 꽤나 자주 행복해 지곤 한다. 한 번은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버터에 식빵을 구웠다. 팬 한편에 여분이 남아 있길래 달걀도 '탁' 풀었는데. 그때였다. 신선한 유정란이 고소한 버터 위에 동그랗게 펼쳐졌다. 완벽한 원의 형태는 아니지만. 널찍한 팬 위,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 일정한 원의 형태를 유지하며 지글거릴 때.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이전에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다녔던 교육원에서 만난 분이 있다. 그녀는 연상의 연인과 여러 해를 넘기고도 알콩달콩함을 뽐내곤 했다. 어떤 사람이기에 긴 시간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다른 동기분이 남자 친구는 어떤 사람이냐 그녀에게 물었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완전한 사람이에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문장이 뇌리에 박혀 긴장되는 상태로 면접을 보다가도 생각이나 종종 인용하여 내뱉곤 했다. ‘저는 완벽하진 않지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꾼다’고.


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을 가졌다.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입 밖으로 결과를 내뱉지 못했으며 한 번의 실수에 크게 자책했다. 더군다나 워커홀릭이며, 욕심이 많고, 승부욕도 강하다. 심한 경우 인간관계에서 충돌을 빚곤 했다. 결론적으로 일에 있어서는 피곤한 성격을 가진 셈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완벽을 위해 추구하는 완전함. 계란 프라이가 뽐내던 원에 가까운 형태에서 내가 짜릿함을 느낀 데에는 꿈꾸던 모습, 즉 완벽함에 대한 갈망이 투영되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계란 프라이는 마치 그림같이 완벽한 원의 형태는 아니었다. 단지 완전한 형태였을 뿐.


난 요즘 이력 상 처음 적어 내릴 공백기에 큰 불안함을 경험하고 있다. 자주 선명한 꿈을 꾸고 심할 땐 2~3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기도 했다.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완벽하지 않은, 모난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조금 더 자주 행복하고 짜릿한 계란 프라이 같은 나를 맞이하기 위해 말이다.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보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다....
몸도 머리도 비워서 가볍게 놔두면 또 움직일 동력도 생기기 마련이다.


코로나가 다시 격상하였다. 취업처는 더욱이 부족해졌고, 그에 비해 늘어난 실업자들은 더욱이 힘든 상황이다. 나 역시 현재 무직이자, 한 명의 어리석고 결핍이 있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달려갈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이 상황도 내 탓이 아니기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


다시금 일어날 순간을 위해 비는 시간 동안 무엇이라도 하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몸도 머리도 비우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시간들은 모여 조금 더 노랗게 명랑한, 조금 더 둥그스름한 나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완전'한 나를 위하여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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