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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스토리 Apr 15. 2024

오랜 직장 상사로부터의 전화

"어이 자네 잘 있는가?"

핸드폰 벨이 울린다.

"ㅇㅇㅇ 전무님" "어머 전무님이 왠 일 이실까?" 놀라서 전화를 받는다.

"어머 안녕하세요 전무님 하하하 호호호"

호칭 뒤에 따르는 웃음은 밥 먹고 난 뒤 후식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커피 같은 것이다.

어색할 타임에 커피 한잔 호로록 들이키듯 웃음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전무님의 귓가에 닿자 말자

바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함께 "잘 살고 있는가?"  

 "어이 내가 지금 여그가 어딘 줄 아는가? 자네가 사는 동네 넘어 자네 댕기든 교회 앞에 지나가네.. "하시며 껄껄껄 웃으신다.


"어머 거기는 웬일로 가셨나요?"

"여그 친구 만나로 왔다가 친구가 스님인디 자네사는 동네 근처에 절이 있고만, 그래서 만나고 집이 가는 길이네 근디 여그가 자네가 댕겼던 ㅇㅇ교회 드라고.. 자네 생각이 나서 전화 한번 해봤제"

"우하하하 정말요? 아이고 어찌 기억하시고 전화를 주셨네요.. 너무 감사해요"

"내가 자네가 준 성경책 아직도 있네 가끔 교회 가서 헌금도 하고 오네잉"


뜨문뜨문 정말로 몇 년에 한 번씩 먼저 전화를 주시는 나의 오랜 상사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을 만난 지가 28년쯤 전인 것이다.

19살 뜨거운 여름날 농협에 입사해서 한 2년여쯤이 지난 후 전무님을 만났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40대 초반에 최연소 상무님으로 승진하고 발령을 받아 내가 근무하던 농협으로 오셨다.


직장 상사들은 그 나이 때엔 다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좌충우돌 실수도 하고 했지만, 그래도 참 많이 예뻐해 주시고 챙겨주셨던 분이셨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일인지는 잘 기억할 수 없지만, 굉장히 힘들어하셨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업무적인 일들로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늘 근심 어린 모습이 한동안 지속되었던 때를 내가 본 것이다.


어느 날 일하는 사무실에서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나는 어떤 생각였는 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성경책을 한 권 사서 그분께 선물해 드렸던 일이 있었다.

그 후로 가끔 나의 뒷자리에 앉으셨었는데 성경책을 펼쳐놓고 읽으시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농협에서 7년째 근무를 하다가 IMF를 지나며 구조조정 이 있었고 퇴직금 2배를 지급해 주던 일이 있었다.


나의 오랜 꿈이었던 선교사를 위해 나는 농협을 퇴사했다.

농협을 다니며 신학교에 1년여를 열정적으로 다녔고 열심히 공부했었던 것이다.

사실 퇴근 후 1시간을 운전하고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전무님의 도움이 있었다. 그때는 '출납계'라는 업무가 있었는데 그 업무는 가장 나중에 마감을 하고 퇴근하는 자리였기에 정시에 퇴근은 정말로 어려웠다. 그러나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업무분장을 통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퇴사 후 전무님도 다른 농협으로 발령이 났고, 그 후로 한 번쯤 뵌 적이 있었는데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택배가 집으로 오곤 했다. 농협에서 수매해 판매한다는 단호박 그리고 복분자 발전을 위한 첫 멤버였는데 멋지게 상품화해서 보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정말 맛있게 먹었었다.


어제처럼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전화를 주셔서 "어이 나여그 ㅇㅇ교회 왔네 성경학교 하드만.. 내가 헌금하고 왔네잉"하시면 뜬금없이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었다.

결혼 전 농협에 근무하면서 나의 휴가는 늘 성경학교 교사로 봉사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었다. "휴가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으시면 "성경학교 하러 가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교회만 보면 혹은 내가 사는 동네를 기억하고 전화를 주시는 분이 있었네 하며 혼자 생각하게 된 어제였다.

결국 어제 나는 전무님께 마지막 메시지를 이렇게 말씀드렸다. "전무님 절에 댕기셔요?"라고 "아니 친구가 스님이라고.." 나와 전무님은 크게 한바탕 웃었다. "전무님 교회 꼭 가세요!"라며 몇 마디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그때의 추억을 상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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