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스토리 May 08. 2024

"그러니까, 울지 말고 딸기 먹자"

꼭 딸기가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5월 7일..

퇴근 후 20대 초반의 아이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중이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씻은 얼굴에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잠시 거실의 베란다를 바라보며 넓은 막 한 6인용 식탁에 앉았다. 습관처럼 인스타를 들여다보며 내일이면 5월 8일 어버이날이라는 제목의 피드들이 올라와 감사의 표현을 담은 내용이 많다.


그러다 순간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인지, 눈알 안쪽의 신경에서부터 인지 알 수 없는 묵직한 울음과 함께 눈물이 토해내듯, 그간에 서러움의 창고가 개방된 듯 갑작스럽게 꺼이꺼이 울음이 쏟아져 나온다.


거실 한편에서는 금방 차려놓은 반찬에 밥을 먹는 딸아이가 내게 묻는다.

"왜? 엄마 왜?"

울며 찌그러진 내 얼굴을 보여주긴 싫었는지 반사적으로 등을 돌린 채 "윽윽 흑흑흑" 나도 알 수 없는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두 번째 세 번째 묻는 딸아이의 말에 대답하길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어어 으흑흑으으"

딸이 묻는다.

"갑자기?!"


그랬다. 갑자기..

아니 보고 싶음을 수년째 참아두며 삭혀내지 못한 울음이 터졌던 것일 것이다.


언제나 울음을 참는 사람이었다.

남들 앞에서 혹은 아이들 앞에서 남편 앞에서 울어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에 울지 않는다.

울며 일 그러 지는 내 얼굴은 더욱 보여 주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울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잘 운다. 새벽예배 기도시간에..  

혹은 혼자 있을 때..

혼자서 드라이브를 할 때..

기도 할 때를 제외하곤 긴 시간 공들여 울진 않는다.

울음이 짧다.


쓰레기봉투에 꽉꽉 눌러 담는 도중 삐죽한 물체에 찔려 쫙 쏟아지듯

터지면 안 될 곳에서 한 번씩 터지는 못난이 얼굴을 한채

서러움이 몰려오면 "컥"하고 멈추는 울음 덕분에 목과 눈알이 쓰리고 아픈 경험을 하며 산다.


언젠가 울음도 참으면 병이 된다는

귀가 얇은 건강 지식을 얻었다.

그래서 울고 싶으면 이제부터는 맘껏 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5월 7일 밤이었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나를 키워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7-8년이나 되었다.

매일처럼 "나는 우리 손지 딸이 질로 사랑 와(나는 우리 손주딸을 제일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신 분은 딱 한 분 아니 두 분이었다.

늘 내편이었던 두 분 그렇게 먼 길을 떠나버린 어른들의 모습이 이런 날 그렇게 생각이 난다.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분들이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손길도 말씀하시던 그 입모양 역시 지금도 바로 옆에 있듯이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다.


당황해하는 딸아이에게서 여전히 등을 돌리고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눈물이 눈꺼플 속에 가득한 채로 손가락을 움직여 인스타를 뒤적인다.

그러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자동급식 통에 매달려 앞 발을 이용해 사료를 꺼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왔다.

고양이의 야무진 행동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몇 초 전까지 울다가 웃는 나는 어쩌면 딱 조울증 환자 같은 모습였을 것이다.


딸이 또 물었다. 등돌려 보지 않아도 알것 같은 목소리다.

놀라 토끼눈을 한 모습으로 "괜찮아?!"

몇 초간 웃다가 다시 우는 내 모습에 이제는 민망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히히히히히히"

나보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이에게 불안함을 조성하는 것 같아 미안함이 몰려왔다.


민망함에 책상에 다시 인스타를 뒤적였다.

이번엔 예쁜 딸기를 올려둔 피드를 보게 되었다.

너무나 빨갛게 맛있게 익은 주먹만 한 딸기를 보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음 딸기 맛있겠다"


그랬다. 딸기는 맛있게 생겼었고, 감정은 점점 수그러들어 마르지 않은 눈물자국 그대로지만 웃고 있었다.

마흔 후반의 나이 '갱년기 인가?'

감정은 슬펐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은 웃겼기에 참지 않고 울고 웃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내 감정에 충실한 사람처럼 울고 웃는 나는 자연스러웠다.


주섬주섬 양말을 신던 딸아이은 잠깐 나갔다 온다며 나갔다.

종일 읽지 못한 책의 내용이 궁금해 책을 펼치고 읽어 내려가며 밤 9시만 되면 줌으로 만나는 글동무를 볼 시 간이 되었다. 주로 책 이야기를 하거나, 글이야기 혹은 인스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만나는 틈에 딸아이가 어느새 들어와 갑작스럽게 딸기 씻어서 한 바구니를 내 앞에 내민다.

딸기의 크기도 왕 딸기다.


내 감정에 충실하느라 언제 들어온 지도 몰랐는데, 딸기를 들이밀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 울지 말고 딸기 먹어"

딸아이의 깜짝 선물에 놀라서 다시 울컥했지만 늘 습관대로 울음을 삼켜냈다.

줌에 나오는 내 모습과 그제야 또 울면 딸아이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큰아이 백일 무렵의 일이다.

백일도 안된 아이가 큰 수술을 하고 죽느냐 사느냐 할 때 내 모습을 본 의사가 한 말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울면 아이가 슬퍼해요 울지 말아요 엄마가 힘을 내야 아이도 건강해질 수 있어요" 의사의 그 말은 아이들이 20대가 될 때까지 지켜내었다. 아이들 앞에서 울지 않는 엄마로 살았다.

물론 어쩌다 한 번씩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연기하며 울었던 적은 있었다. 그러면 좀 반성하는 아이들을 보았기에.. 나 혼자 뒤돌아서서는 씩 웃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이제는 내 울음에 내 서러움에 솔직하고 싶어졌다.

물론 많은 사람 앞에서 찌그러진 모습을 하고 울고 싶지는 않지만, 슬픈 내 감정에게 말을 걸어 보고 싶어 졌다. "울지 말라고"가 아니라 "슬펐구나 울고 싶구나"로 위로하고 싶어졌다.

흉측할까 봐 울음과 슬픔을 참고 견디느라 오랜 세월 힘들었던 나를 보듬고 싶어졌다.


딸아이는 가끔은 내 엄마가 다시 태어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주 작은 엄마인 나의 소리 혼잣말을 잘 알아듣는다. "딸기 맛있겠다"는 말을 들었고,

우는 엄마에게 딸기를 사줘 가며 달래고 싶은 마음은 딸이 아닌 엄마의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부디 내 엄마가 아닌 나의 딸로만 살아 주길 바란다.

그게 또 난 미안해서 가끔 딸에게 쏘아 말한다.

"그래 네가 엄마 해라 이년아!"라고..

꼭 딸기가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울지 말고 딸기 먹자"

행복해서 또 눈물이 났다.


카네이션 대신 딸기 선물

맛있고 달콤하고 새콤하고 배불렀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 직장 상사로부터의 전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