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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스토리 Jan 31. 2024

내 이름은 성기능 장애

야무진 이름 "성기능 장애"

겨울비가 내리는 제주의 삶은 비가 오나 보다.. 라기보다는 대낮임에도 컴컴하고 우중충함 억지로 웃지 않으면 우울함까지 더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말하곤 한다. 출근해서 11시 조금 넘을라 하면 윗 상사님은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두고 계셔서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신다. 나는 거의 보통은 사무실에 도시락을 싸와 먹거나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이렇게 비가 내려도 차를 타고 밖을 나가본다. 사무실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그동안 필요했던 책을 골라보거나 근처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기도 한다.


아주 오랜만에 편의점에 갔다. 종류대로 줄지어 있는 컵라면 매대를 바라보며 무얼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종류가 넘쳐났다. 3천 원이 넘는 컵라면부터 최저가 1,400원의 김치컵라면까지 종류는 다양했지만 내가 고른 것은 최저가를 골랐다. 그냥 김치국물이 먹고 싶어서였다. 점원께서 나를 보며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냐며 묻는다. 나는 종종 이 편의점에 들러 사무실 회의 때 쓸 생수와 다과 준비를 했었기에 주인과 나는 초면일리가 없다. 계산대 위에 내가 고른 김치컵라면을 올려놓고 그 앞에는 나보다 먼저 고른 손님의 물건이 올려져 있다. 그 손님이 고른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마하게 야무진 네모난 각의 앞면인지 뒷면인지 모를 면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후두암" 무언가 점원과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점원의 등뒤 뒤편에 줄지어 진열된 곳에서 점원이 내놓은 '후두암'이 아닌, '성기능 장애'라고 쓰여 있는 것을 달라고 한다. 곧바로 '후두암'은 제자리에 진열해 두고 '성기능 장애'를 뽑아 손님께 건네 드리고 있었다. '성기능 장애'라 쓰여 있는 물건을 건네받은 손님은 계산을 하고 고이 가슴 안쪽 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떠났다. 내 차례가 되어 1,400원의 값을 계산하고 편의점 창문가 바 의자에 앉아, 포장을 뜯고 뜨거운 물을 붓고 잠시 기다리는 틈에 이삿짐을 싸던 일이 떠올랐다.


옷방으로 쓰던 부엌 옆방에 5단 서랍장 위 작은 바구니 속에 물건이 떠올랐다. 누군가 사용했던 흔적이 있었다. 이름은 '성기능 장애'였다. 늘 세트로 따라다녀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라 그 옆에는 가스라이터가 떡하니 놓여 있고, 그 위엔 얇은 장갑 한 장이 덮여 있었다. 우리 집엔 2남 1녀와 남편과 나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이다. 남편은 '성기능 장애'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남편은 패스였다. 나 역시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고, 그렇다면 2남 1녀가 사용한 물건이라는 말이다.

이삿짐을 싸다 말고 픽 웃음이 나왔다. 어떤 녀석이 사용했을까? 딸아이는 아니라는 걸 짐작하지 않아도 알 것 같고, 그럼 수사망은 좁혀져 2남 중 누군가 이거나 그 둘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그 두 개의 물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단체 톡방에 올렸다. 그래야 했던 이유 역시 있었다. 언젠가 책장을 정리하다 책 장사이에 끼워져 있던 그때도 역시 '성기능 장애'를 발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름이 아닌 건강을 염려하는 이유로 이 물건만큼은 사용하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그 후로 아주 오랜만에 발견된 물건이었다. 또한 나는 이 물건의 향기만큼은 아주 개코처럼 잘 맞추는 사람인데 그간 한 번도 집에서나 혹은 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걸 내가 발견하지 못했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번엔 조금은 단호하게 말해두고 싶었다. 혹시 모를 남편까지 알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단체 가족톡방에 물었다. "이거 혹시 누구냐?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간다. 엄마가 그래도 스스로 알아서 잘 들 하겠거니 하고 말 안 하고 넘어가면 엄마가 우습지?(왜 그랬을까? 조금은 후회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대뜸 "성기능 장애를 기대하고 있는 새끼 누구냐?"라고 했더니 큰 녀석의 대답이 딸을 지목한다. "심지어 반이상 태워서 성욕을 감퇴시키는 중인 새끼는 누구냐?"라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자신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올해로 갖신입 20대가 된 막내 녀석까지 모두 20대 청년이자 성인이 된 집이다. 그렇더라도 건강에 관련해서 금지를 약속했었고 '성기능 장애'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역시 아이들이 더 잘 알기에 잘 지켜지고 있는 줄만 알았다. 약간의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만약 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까 싶은 걱정도 되었기에 그렇담 가족 모두가 도와야 하는 상황을 서로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가족단톡방에 올렸는데 범인이 없다.


결국 범인은 본인만 알기로 하고 나는 종료했다. 심각한 골초여서 '성기능 장애'가 없으면 금단 현상을 경험하는 단계가 아니기에 이쯤 해 두었지만, 스스로 정리할 것을 부탁했고, 지금은 아무도 자수하지 않았지만 곧 있음 누군가는 스스로 밝힐 것을 알기에 야단을 멈추었다.


십여 년쯤 전의 일이다. 말레이시아 랑카위에 여행을 갔을 때 어느 상점에 글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혐한 사진과 함께 진열되어 있던 담뱃갑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이토록 무서운 모습의 경각심과 우려 속에서 팔리고 사는 물건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런 그림을 보면 구매욕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안쓰럽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 후로 몇 년 뒤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되어 담뱃가게 멋진 그림들은 사라지고 혐한 모습의 그림과 함께 이름처럼 하나씩 붙은 문구들이 편의점에 김치라면 값을 지불하며 더욱 눈에 띄었던 것이다. '성기능 장애, 후두암, 폐암, 뇌졸중, 수명단축, 기형아 출산, 심장병, 치아변색, 간접흡연 피해, 구강암, 등의 이름을 달고 팔리고 있었다.


새해가 되면 금연을 다짐하며 계획을 세우고 참아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봐왔지만 통계에 따르면 70% 정도는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다는 결과에, 우리 집의 청년들 2남 1녀를 두고 있는 부모로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아이들을 믿기도 하지만 청소년 시절 호기심의 유혹에 한두 번쯤은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달래고 때론 대화로 풀어 보려고 쿨한척 넘어간 일들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남편말을 빌리자면 담배의 참맛을 몰라서 호기심에 한 번씩 해본 것 같다며, 수십 년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을 봐왔기에 처음부터 금지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늘 대화와 여러 가정들을 늘어놓으며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청년을 맞이한 아이들이라 잘 정리될 거라 믿어 본다.


최근 한국사회에서의 담배에 대한 인식으로 "담배의 큰 해악에도 여전히 담배가 기호품으로 인식되고 편의점 계산대, 지하철 무가지 광고 등에 청소년들에 노출되고 있다"며 "담뱃갑 포장에 흡연 경고사진을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전국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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