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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 저기 Jul 15. 2024

한 여름 동남아! 세부, 필리핀 (2023, 여름) 2

난생처음 7말 8초 피크타임 여름휴가

잇츠 모닝 꼰대 타임

어제 물놀이에 체력을 소진한 두 사람은 정신없이 자고 있다. 미리 사놓은 식빵과 요구르트와 1회용 커피봉지를 들고 테라스로 조용히 나와 셀프 조식을 한다. 비가 오는데도 꼬맹이 몇 녀석이 물놀이 중이다.

나는 동남아에 올 때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꼰대라는 증거다. 왜냐하면, 지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거리에서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웃통을 벗고 새카맣게 탄 꼬마 녀석들의 천진한 모습에서 초등학교 시절 콧물 훌쩍이던 동네 친구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제 택시에서 지저분한 로컬 풍경을 보며 이국적으로 느끼고 있는 B에게 나는 말했다. "K가 어렸을 때 우리도 저랬어. 원조가 필요했던 나라였고, 많이 다르지 않았어".


조용히 셀프 조식을 하며 똑똑한 친구 ChatGPT에게 내가 태어나던 해 한국과 필리핀의 GDP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이 자식이 워낙 똑똑한 놈이라 몇 초만에 답을 준다. 역시! 우리나라 GDP가 필리핀의 절반도 안 되는 정도다. 그땐 필리핀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았다.


 그 20년 후인 1985년 두 나라의 GDP가 어땠는지 다시 물었다. 결과는 그 20년 사이에 우리나라가 필리핀보다 3배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물론 GDP가 유일한 국가 부의 척도는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의 지표 차이면 상당히 유의미한 것 아닌가!



태어나 보니 선진국 비슷한 나라가 된 대한민국만 보며 자란 B나 다른 젊은이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불가사이하게 빠르게 성장한 과실이 주는 아픔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가난에서 급하게 뛰어오느라 흘린 것도 많았고 챙겨할 것을 챙기지 못한 것도 있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도 아니다.


이런 국가 사회 유기체의 성장사 경험이 뇌리에 배어 있는 나는 동남아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에서 아련한 내 깊숙한 기억을 소환한다. 각설하고, 급히 뛰며 성장하느라 우리에게 깊이 인 박혀 버린 ‘천박한 자본주의’의 나쁜 습관이 고쳐지기를 바랄 뿐이다.


휴가처에서 그것도 아름다운 라군뷰 테라스에서 굳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꼰대가 맞다. 인정한다. 그 사이 비는 그치고 해가 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물놀이를 한다.


DAY 3

모닝글로리

문구점이 아니다. 막탄시에 있는 한국인 운영 식당이다. 현지 음식에 기댈 곳이 없는 우리는 속풀이 국물이 간절하다. 쌀국수 한 그릇 먹자고 30분 택시 타고 막탄으로 이동한다.


매운 해물 쌀국수 국물이 매콤하니 시원하다. 남국의 향신료도 없다. 역시 한국분이 하시니 우리 입맛에 딱이다. 생선투김과 쌀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속을 푼다. 어쩔 수 없는 우리는 한국인.

막탄에 쇼핑몰이 있을 줄 알았으나, 뉴타운이라는 푯말은 그지만 아직 아무것도 없다. 높은 빌딩 몇 개 만 올라갔을 뿐이네… 그래서 다시 그랩을 불러 마리바고로 이동한다. 숨이라는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디저트를 먹을 참이다.


카페숨

메인스트릿에 보이는 한국인 운영 카페인 듯싶다. 들어가니 꼬리꼬리한 냄새가 살짝 나는 것이 동남마 맞나 보다.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해 먹고 수다 떨다가 나왔다. 수다 중 내가 INTJ형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특징 설명을 보니 딱 나다.



카페를

나와 마트를 가려고 한다. 거리는 1.2jm 차로는 2분 걸어서 15분이다. 대낮이고 하니 로컬 길을 걸어가 본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 태양이 강렬하진 않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들이 얽혀 걸어간다.


세이브 모어 마켓

현지 슈퍼마켓이다. 가격도 싸고 구경거리가 쏠쏠하다. 점점 아줌마 호르몬이 강해지는 듯싶다.  B가 천조각으로 얽어 짠 발받침이 있는데 색상이 너무 이쁘다. 가격은 80페소(약 1800원)다. 두 개가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너무 싸니 고민 없이 둘 다 사버린다. 이런 게 부유한 자의 여유인가. 어딜 가도 가격 걱정이 없으니 참 좋다.


일찌감치 리조트로 복귀한 우리는 물놀이와 휴식을 할 예정이다. 망고 커팅 서비스를 요청해 놓았는데 30분 걸리다더니 더 지나도 안 온다. 역시 행동이 굼뜬다. 그래도 오긴 왔다. 익숙한 솜씨로 망고 4개를 발라 멋들어지게 펼쳐준다. 역시 동남아는 과일이지. 맛있다. 한 열개쯤 사 올걸 그랬다. 한산해진 비 오는 수영장에 나오니 이것도 좋네. 물놀이하러 왔으니 실컷 담그자.


저녁식사는 그랩 딜리버리를 통해 한국음식을 주문한다. 전 세계가 플랫폼 경제시대로 접어들었다. 편하다 편해. 우리는 떡볶이, 상추샐러드, 김밥을 주문하고 어제 사놓은 컵라면과 함께 저녁을 해치운다. 역시 한국음식이 최고다. 아! 한국사람.

오랜만에 여행과 물놀이가 피곤했는지 모두 일찌감치 침대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간다. 데이 쓰리는 마치 한국에 있었던양 지나간다.


PS.

사실 오늘의 야심 찬 계획은 거북이를 보러 어느 섬으로 가는 액티비티 데이였다. 그러나 우리같이 게으른 휴먼에게 대자연의 신비가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거북이를 보려면, 새벽 2~3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거북이가 이른 아침 해초를 먹으러 올라온다나? 그냥 TV에서나 만나보자.


그래서 저녁 늦게 공항에 도착하면, 아싸리 바로 가서 거북시보고 호텔 체크인하는 알뜰살뜰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멋지고 부지런하고 피곤하겠다.


DAY 4

좀 있다 12시에 방 빼야하는데, 오늘도 시작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타이푼은 지나갔다고 하는데 여전히 바람이 거세다. 체크아웃 하는 날이라 남들처럼 일어나 킬리만자로 카페로 조식을 나간다. 오늘은 망고도 준비해 놓은 터라 망고를 실컷 먹었다. 역시 남국은 과일이다. 귀국할 일정만 남았다.


조식 후 약간의 휴식을 하고 체크아웃하고 루틴 귀국. 굿바이 세부, 필리핀!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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