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남도 내륙 종단기 2
어제 임실에서 남원 이동 중 우연히 발견한 남원 시내 베이글 카페. 우와... 인구 7만 도시에 베이글집이? 남원이라는 곳 엄청나다. 150만이 모여사는 광역시에도 찾기 힘든 베이글 전문 카페가 남원에 있다. 참새는 방앗간을 못 지나치지? 조식은 베이글 샌드위치다. 체크아웃하고 이곳으로 직행해서 베이글 샌드위치와 초코칩베이글을 주문한다. 맛은 비교적 괜찮은 편. 그 도전의 용기 만으로도... 특별히 괜찮은 것은 초코베이글이다. 식감이 플레인보다 더 쫀득하고 초코가 달달하니 딱 취향저격이다. 매장의 분위기나 맛등 디테일이 서울의 탑급 베이글샵에 비하면 조금 약하지만, 이 정도면 손뼉 쳐 준다. 젊고 조용한 레이디 사장님 파이팅입니다.
도시 여행 중 빠지지 않는 코스는 시장통 둘러보기다. 도시마다 시장은 공통점과 개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까 그 도시의 모습을 엿보기에 아주 좋다. 그런데... 비 오는 평일이기는 하지만, 시장이 텅 비었다. 반 이상이문을 닫은 상태이고, 몇몇 상인 분들은 호객할 의용조차 없어 보인다. 이불가게에 모인 할머니들의 화투놀이 모습이 정겹긴 한데, 이 적막감은 조금 슬프다.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G의 등살에 시장에 가면 있겠지 했는데 여쭤보니, 없단다. 하긴 어르신들만 사시는 동네에 무슨 떡볶이 라볶이가 있겠는가... B 왈 "어제 임실과 남원시장이 지금까지 우리가 가본 시장 중 가장 아무것도 없다" K의 답은 이렇다 " 우리가 인구 2만 5천, 7만 5천 도시를 여행한 적이 없단다".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대도시 빼고 너무 늙어가고 있다.
떡볶이 탐험에 실패하고 찾은 대안은 106년 전통의 남원 대표 중국집 경방루이다. 미디어에도 많이 소개된 유명 인사다. 한번 가봐야지? 간단한 점심을 위해 단출한 주문. 원톱은 좀 맵지만 내용물 풍성한 짬뽕이다. 짜장도 투박하지만 개운하고 괜찮다. 세 번째 군만두는 비추다. 인테리어는 번쩍번쩍 돈 많이 벌어놓으신 지역의 중심 식당답게 아주 깨끗하다.
비가 오기에 여러 가지 액티비티 중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미술관 투어로 오후 메인 일정을 잡는다. 사장에 이어 지역 미술관도 가면 꼭 들르는 필수 '방앗간'이다. 별 기대 안 하고 갔는데... 꽤나 인상적인 포인트를 가진 미술관이다. 만족도 급 상승하고 최고점을 찍는다. 날씨가 한몫하긴 한 것 같다. 동양화가 김병종 선생의 작품도 좋지만, 미술관 공간 그 자체로 미술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예향 호남의 섬세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특별히 '물멍 공간'이라고 명명한 통창이 있는 방은 압권이다. 한참이나 멀리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 눈앞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동심원들을 보자니 너무나 몽환적이다. 날씨가 맑았으면 느끼지 못할 이란 감흥이라니... 이래서 여행은 인생인거지. 맑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비 온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구름에 가린 저 멀리 지리산 능선을 넘어 내려가면 경상남도 함양 땅이다. 아.. 지리산... 얼마나 넓은가. 빨치산이라는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아무 말 없이 품고 오늘도 묵묵히 있는 지리산을 보니 한편 마음이 짠해진다. 아직도 어떤 이들은 그 이데올로기를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하고 있다. 내가 완전한 노년이 되는 시절쯤이면 우리 사회가 그런 아픔의 시간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지리산을 품에 안겨있는 이 미술관은 자리가 다 했다 싶다. 아름다운 곳이다. 봄과 가을, 겨울에도 와 보고 싶다.
미술관의 몽화경에 취해있다가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제는 저녁 먹으러 여수로 남진해야 한다. 저녁 메뉴는 꽃게살 비빔밥이다. 물론 꽃게 매운탕도 같이다. 남원에서 여수까지는 약 80km,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이동 중에 고속도로에 비가 어찌나 쏟아지는지 눈앞 시야가 방해를 받을 정도다. 안전운전 또 안전운전. 여수에 도착하니 하늘은 밝아지고 비는 그친다. 골목 안 식당으로 바로 직행한다. 이건 미쳤다 싶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맛있는 건가. 전라도 음식들을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멀지도 않은 다른 지방은 왜 이리 못하냐고. 신기하다 신기해. 비빔밥이 압권이다. 뻘겋지만 안 맵고 깊지만 개운한 맛이다. 매운탕은 시원은 한데 비빔밥보다는 못하다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꽃게탕 안에 있는 꽃게가 어찌 그리 탱탱하고 먹을 살이 많은지... 탕 안에서 나온 게가 이렇게 많은 게살을 품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역시 남도다. 푹신한 비닐 장판 위에 앉아 소박한 플라스틱 그릇에 슥슥 비벼 먹는 비빔밥의 맛은 정말이지 일품이다.
식사를 마치고 긴 이동을 했으니 숙소로 들어가 쉬자. 여수 숙소는 라마다바이윈덤여수다. 돌산섬 바닷가에 있는 호텔인데, 가성비가 뛰어나 예약한 듯하다. 월드 체인점이니 관리는 깨끗하게 잘했겠지. 오랜만에 꽤나 남쪽으로 내려왔다.